네모트론 3.5 무료 공개 하루 앞 월가 초대형 자본 유치한 이유
엔비디아가 미국 현지시각 11일 공개한 새 인공지능(AI) 모델 ‘네모트론 3.5 라이트닝’의 가격은 0원이다. 누구나 내려받아 쓴다. 고쳐 써도 된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같은 주, 엔비디아는 정반대 숫자를 만들었다. 하루 전인 10일, 아폴로·블랙록·골드만삭스 등 월가 금융사 6곳과 손잡았다. 목표는 5000억 달러, 우리 돈 710조 원 조달이다.
한쪽은 공짜. 한쪽은 710조 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왜 자기 기술을 공짜로 풀었을까. 그리고 그 다음 날 왜 거액의 금융 동맹을 발표했을까. 두 사건은 따로 벌어진 게 아니다.
먼저 네모트론 3.5가 뭔지부터 보자.
AI가 일하는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하나는 학습, 하나는 추론이다.
학습은 AI를 가르치는 단계다. 방대한 자료를 먹여 똑똑하게 만든다. 힘은 많이 들지만 한 번이면 된다. 추론은 다 배운 AI가 실제로 답을 내놓는 단계다. 챗봇에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작동한다. 하루에도 수억 번 반복된다.
네모트론 3.5는 이 추론 단계, 그중에서도 반복 작업을 빠르고 싸게 처리하도록 만든 모델이다. 크기는 300억 개 파라미터(AI의 두뇌를 이루는 계산 단위)다. 하지만 질문 하나를 처리할 때 실제로 움직이는 건 36억 개뿐이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 쓰는 구조라서다. 이런 설계를 ‘혼합 전문가(MoE)’라 부른다. 사내에 300억 명이 있어도, 일감이 들어오면 그중 딱 필요한 36억 명만 회의실로 부르는 셈이다.
크기를 줄인 방법도 있다. ‘증류’다. 덩치 큰 AI가 낸 답을 교재 삼아, 작은 모델을 훈련시킨다. 큰 선생님의 노하우를 압축해 작은 제자에게 넣는 방식이다. 그 결과 네모트론 3.5는 오픈AI의 오픈소스 모델 ‘gpt-oss-120b’와 비슷한 지능 점수를 냈다. 크기는 4분의 1이다. 속도는 초당 약 670토큰. 동급 모델 중 가장 빠르다는 게 엔비디아 설명이다.
여기에 ‘네모 스위치야드’라는 교통정리 도구도 함께 내놨다. 쉬운 질문은 싼 모델로, 어려운 질문만 비싼 모델로 자동으로 넘겨주는 프로그램이다. 식당으로 치면, 간단한 주문은 신입 직원이 받고 복잡한 컴플레인만 매니저가 나서는 구조다. 이 방식을 쓰면 AI 운영 비용을 최대 3분의 1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고 엔비디아는 밝혔다.
이 정도면 눈에 띄는 기술이다. 그런데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공짜로 풀었나.
답은 록인(Lock-in)이다.
엔비디아가 지금까지 AI 학습 시장을 장악한 힘은 칩이 아니라 ‘쿠다(CUDA)’라는 소프트웨어였다. 쿠다는 엔비디아 칩을 다루는 조작법이다. 개발자가 한번 손에 익으면 다른 회사 칩으로 못 옮긴다. 아이폰 쓰던 사람이 안드로이드로 넘어가기 싫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게 록인 효과다.
그런데 추론 시대가 오면서 이 왕국에 틈이 생겼다. 학습엔 뭐든 잘하는 만능 칩이 유리하다. 추론은 다르다.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니, 그 일만 잘하는 값싼 전용 칩이 더 낫다. 구글은 TPU, 아마존은 인퍼렌시아,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아를 스스로 만들었다. 값싼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도 치고 올라온다.
엔비디아의 대응이 네모트론 3.5다.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풀어, 기업들이 오픈AI나 구글 같은 곳에 매달 이용료를 내는 대신 자기 회사 안에서 AI를 직접 돌리게 만든다. 그런데 그 AI를 돌리려면 결국 GPU가 필요하다. 엔비디아 GPU다.
소프트웨어는 미끼다. 하드웨어가 진짜 상품이다.
산업 전체로 보면 문턱이 낮아진다.
지금까지 AI를 직접 만들어 쓰려면 큰 데이터센터와 거액의 이용료가 필요했다. 네모트론 3.5는 노트북 한 대, GPU 하나로도 돌아간다. 회사 안에서만 데이터를 처리하니 외부로 정보가 새나갈 걱정도 줄어든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보안 기업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이 모델로 보안 경보를 자동 분류한다. 법률 회사 하비는 대량 계약서 분석에,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부미는 사내 업무 라우팅에 붙였다. [확인필요: 개별 기업 도입 성과 수치는 엔비디아 자체 발표 기준으로, 제3자 검증 필요]
보안, 법률, 금융처럼 데이터를 함부로 밖에 내보낼 수 없는 업종일수록 이런 ‘내 손안의 AI’가 반갑다. AI 도입 문턱이 낮아지면, 그만큼 AI를 쓰는 회사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결국 서버를, 결국 엔비디아 칩을 산다.
710조 원짜리 조각은 그 다음을 대비한 것이다.
AI 인프라를 지으려면 천문학적 돈이 든다. 아폴로 짐 젤터 사장은 앞으로 필요한 자본을 8조 달러로 봤다. 엔비디아 혼자, 심지어 고객사 혼자 감당할 액수가 아니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월가로 갔다. 금융사 6곳이 연기금과 보험사 같은 곳에서 돈을 모아, 엔비디아 고객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빌려주는 구조다. 젠슨 황 CEO는 이 5000억 달러가 “엔비디아의 매출도, 한 고객에 대한 약정도 아닌 제3자 자본의 총량”이라고 선을 그었다.
칩을 팔고, 소프트웨어로 그 칩의 쓸모를 늘리고, 그 칩을 살 돈까지 깔아준다. 사흘 사이 벌어진 두 발표를 이으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그래서 엔비디아의 앞날은 더 밝아졌나.
단기로는 그렇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금융까지 세 겹으로 두른 진입 장벽은 경쟁사가 뚫기 쉽지 않다. 후발 주자가 칩 성능을 따라잡아도, 개발자들이 이미 쿠다와 네모트론에 익숙해진 뒤라면 갈아타기 번거롭다.
다만 낙관만 할 처지는 아니다. 골드만삭스 CEO는 이번 금융 동맹을 “엔비디아 컴퓨팅을 담보로 한 신용시장”이라 불렀다. 블랙록 회장은 1970년대 주택담보대출 증권화에 비유했다. 두 표현 모두 이게 빚으로 쌓아 올린 성장이라는 뜻이다.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는 “다음에 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2031년 의회 청문회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엔비디아는 공짜 AI로 저변을 넓히고, 그 저변이 만들 수요를 담보로 빚을 낸다. 수요가 예상대로 오면 지금의 삼각 편대는 단단해진다. 수요가 꺾이면, 소프트웨어도 금융도 동시에 흔들린다.
710조 원짜리 베팅의 성패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