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전쟁이 건드린 불편한 질문
45조 원. 숫자부터 말하자.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돈이다. 올해 추정 영업이익 300조 원의 15%다. 대한민국 1년 교육 예산(약 100조 원)의 절반에 가깝다.
너무 많다. 국민 10명 중 7명이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잠깐.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너무 많다’는 건 알겠다. 그럼 도대체 얼마가 적당한가. 그리고 그 돈은 원래 누구 것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노조도, 사측도, 정부도.
불씨는 SK하이닉스가 당겼다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입사 4년 차 직원이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성과급 계산법을 공개할 수 있냐”고. 회사는 대답 못 했다. 최태원 회장이 연봉 반납을 선언해도 분노는 안 가라앉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4년간 노사가 대화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영업이익의 10%, 상한 없음.’ 지난해 9월 합의했다. 올해 초 직원들 통장에 기본급의 2964%가 꽂혔다. 연봉의 1.5배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들끓었다. 조합원이 6개월 만에 6300명에서 7만 6000명으로 불었다. 요구는 명확하다. “우리도 영업이익의 15%, 상한 없음.”
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삼성전자에 날아와 불을 붙였다.
사측 “우리는 다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다르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직원 3만 4000명. 메모리 반도체 하나만 판다. 반면 삼성전자는 12만 8000명. 반도체(DS 부문)뿐 아니라 모바일·가전(DX 부문)도 있다. 반도체 안에서도 메모리는 흑자,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시스템LSI(반도체 설계)는 수년째 적자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전 직원에게 나눠주면 어떻게 될까. 가전·모바일 직원은 억대 성과급 받는 옆 동료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측은 그 박탈감을 걱정한다.
그래서 사측 입장은 이렇다. “반도체 메모리에서는 SK하이닉스 이상 주겠다. 하지만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
노조 입장은 정반대다. “기준을 당신들이 정하면 또 깜깜이다.”
노조의 민낯 “우리끼리만”
삼성전자 노조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눈이 차갑다. 같은 편이어야 할 사람들이 싸늘하다.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 사업장에 소속 외 근로자가 3만 5701명이다. 하청 직원들이다. 방진복 입고 땀 흘리며 웨이퍼 세정하고,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공정을 맡는다. 이들이 1년에 받는 인센티브는 최대 125만 원이다.
노조위원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봤나. “하청 노조가 원한다면 원청과 직접 교섭하면 된다.”
연대는 없다. 오직 ‘우리’만 있다. 반도체 정규직이라는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현대차 노조도 강성이라고 욕먹는다. 그런데 현대차는 하청 노조 조직을 돕고 처우 개선을 함께 요구해왔다. 삼성전자 노조는 그런 역사가 없다.
노조위원장이 총파업 준비 중에 동남아 일주일 여행을 다녀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도한 요구’를 비판하자 “LG 얘기다, 저희는 납득 가능한 15%”라고 받아쳤다. 가만히 있던 LG 노조만 불똥을 맞았다.
진짜 질문 “그럼 사회는?”
노동자 몫이냐, 주주 몫이냐. 이 싸움 뒤에 가려진 질문이 하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은 어디서 왔나. 수십 년간 국민 세금으로 키운 대학과 연구소, 공짜나 다름없이 제공한 부지와 전력, 세금 깎아준 K칩스법, 기초과학 연구 투자.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초과 이익에 녹아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우는 증명했다.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은 자본과 노동 투입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쌓아온 기술 진보에서 나온다고. 그렇다면 초과 이익이 생겼을 때 사회의 몫도 있지 않나.
지금 구조는 이렇다. 노동의 몫은 임금·성과급. 자본의 몫은 배당. 그런데 사회의 몫을 돌려주는 제도는 없다. 있어야 할 장치가 없으니 사회의 기여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 ‘전 국민 반도체 배당’을 주장한다. 독일처럼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넣자는 공동결정제도 거론된다.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그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게 이 사태의 진짜 의미다.
싸우는 동안 중국이 보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가 대치하는 동안 중국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우시 D램 공장 현지 직원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중국 포털에 본사 성과급 뉴스가 퍼졌고, 현지 직원들도 ‘우리 몫’을 묻기 시작했다.
불씨는 번진다. 중국이 움직이면 미국·유럽도 따라온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인력 관리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언제까지 안 간다. 삼성전자가 이 싸움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다음 불황 때 버틸 체력을 결정한다.
45조가 많냐 적냐, 그게 핵심이 아니다. 초과 이익이 생겼을 때 어떤 원칙으로 나눌 것인가. 그 답을 지금 이 나라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