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중단, 미중 관계의 ‘올인’ 선언
베이징 공항. 에어포스원 문이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내렸다. 그 뒤를 이어 내려온 건 각료들이 아니었다. 차남 에릭 트럼프와 아내 라라. 그리고 일론 머스크. 국무장관도, 국방장관도 아니었다. 이 장면이 이번 방중의 성격을 압축했다.
9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마지막으로 찾은 건 2017년 트럼프 1기 때였다.
트럼프는 혼자 오지 않았다.
내각에서만 4명이 왔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 외교·안보·무역. 미중 관계의 핵심 축을 모두 데려왔다.
재계도 총출동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거기서 끝이 아니다. 블랙록, 블랙스톤, 골드만삭스, 마이크론, 퀄컴, 비자, 마스터카드, 보잉, 씨티그룹, GE에어로스페이스, 메타. 쟁쟁한 CEO 14명이 에어포스원에 동승했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미국 자본의 집단 상륙이다.
54년.
미국 현직 국방장관이 대통령 방중을 수행한 건 1972년 닉슨 이후 처음이다. 54년 전 닉슨의 역사적 방중 때,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이 동행했다. 그리고 반세기 넘게 이런 일은 없었다. 헤그세스 장관이 그 공백을 깼다.
의미심장하다. 대만 침공 가능성이 미국의 최대 안보 우려로 자리 잡은 시점이다. 헤그세스가 베이징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중국을 향한 메시지다. 그는 둥쥔 중국 국방부장과도 별도 회동할 예정이다.
루비오의 등장도 예사롭지 않다.
2020년, 그는 상원의원으로서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그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입국 금지 대상이었던 인물이 이번엔 미국 국무장관 자격으로 베이징 회담장에 앉는다. 중국이 받아들였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하루 전에 이미 움직였다. 13일 인천공항 환승 중,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사전 협의를 가졌다. 정상회담 전날 한국 공항에서 예비 담판을 벌인 셈이다. 양국이 회담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드러난다. 무역위원회와 투자위원회 신설이 핵심 의제로 꼽힌다. 미중 무역전쟁 ‘휴전’ 이후 제도화된 소통 채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머스크의 동행은 다른 차원이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대규모 공장을 돌린다. 미중 관계가 흔들리면 테슬라 사업도 흔들린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최측근과 반목 사이를 오갔지만, 지금은 관계를 복원한 상태다. 그 머스크가 에어포스원에 탔다. 베이징 공항에서 각료들보다 먼저 내렸다.
젠슨 황의 합류도 주목된다. 알래스카 급유 기착지에서 방중단에 합류했다. 엔비디아는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 통제 수위가 어떻게 조정되느냐는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 향방을 결정한다.
이번 방중단은 조합 자체가 메시지다.
외교는 루비오가, 군사는 헤그세스가, 무역은 베선트가, 돈은 월가 CEO들이 담당했다. 트럼프는 그 모두를 베이징에 데려왔다. “할 얘기가 많다”는 신호다. 동시에 “줄 수 있는 것도 있고 받아야 할 것도 있다”는 협상 테이블이다.
에릭 트럼프의 동행은 이 방문이 단순 외교가 아님을 상징한다. 트럼프 가족의 비즈니스 이해관계가 미중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베이징도 그것을 안다.
닉슨의 1972년 방중은 냉전 구도를 바꿨다.
트럼프의 2026년 방중은 무역전쟁 이후 미중 관계의 새 틀을 짜는 시도다. 규모도, 목적도, 참석자 구성도 전례가 없다. 54년 만의 국방장관 동행. 14명의 재계 총수. 대통령 가족까지.
역사가 반복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장이 열리는지는 14일 정상회담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