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반도체 수출 첫 400억달러…D램·낸드값 3개월 새 30~60% 급등
2안 물량 아닌 가격이 밀어올린 실적…”관건은 AI 수요 지속성”
숫자가 역사를 다시 썼다. 지난달 한국 수출이 102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간 수출이 1000억달러를 넘어선 건 처음이다.
독일·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다. 무역흑자도 사상 처음 300억달러(361억5000만달러)를 돌파했다.
일평균 수출은 13개월 연속 역대 최대를 이어갔다. 양과 질 모두 신기록이다. 그런데 이 축포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신기록의 절반 가까이를 반도체 한 품목이 떠받쳤다.
◇ 반도체 홀로 43.8%…AI가 만든 신기록
6월 반도체 수출은 448억2000만달러였다. 1년 전보다 199.5% 폭증했다. 단일 품목이 월 400억달러를 넘은 것도 처음이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8%에 이르렀다(산업통상부). 지난해 말 29.9%였던 비중이 반년 만에 급등했다.
원동력은 인공지능(AI)이다. 빅테크 데이터센터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폭발시켰다. AI 서버용 저장장치(SSD) 수요가 몰린 컴퓨터 수출도 308.8% 뛰었다. 지역별 온도차도 뚜렷하다.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으로의 수출이 나란히 처음 200억달러를 넘었다. 상반기 반도체 수출만 1924억달러. 지난해 연간 실적(1734억달러)을 반년 만에 넘어섰다.
◇ 물량은 제자리, 금액만 세 배로
문제는 그 화려함이 어디서 왔느냐다. 핵심은 가격이다. 범용 D램(DDR5 16Gb) 고정가격은 3월 31달러에서 6월 40달러로 올랐다. 낸드플래시(128Gb)도 같은 기간 17.7달러에서 28.8달러로 뛰었다. 3개월 새 30~60% 급등이다.
수출액을 밀어 올린 건 ‘더 많이 판 것’이 아니다. ‘더 비싸게 판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1~4월 D램 수출 금액은 272.8% 늘었다. 그런데 중량은 5.4% 증가에 그쳤다. 팔린 양은 그대로인데 금액만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실적의 상당 부분이 가격 효과라는 뜻이다. 가격이 꺾이면 실적도 함께 내려앉는다.
◇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사이클의 기억
쏠림은 양날의 칼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수요가 둔화되면 수출이 빠르게 위축될 수 있는 잠재 리스크”라고 진단했다.
전례도 뚜렷하다. 2018년 메모리 슈퍼사이클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65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듬해 16조7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호황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사이클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반도체 밖 품목도 28% 늘어 균형 성장을 이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자동차·석유제품·선박도 호조였다. 다만 증가율은 반도체의 7분의 1 수준에 그친다.
◇ 관건은 AI 수요의 지속성
전망은 엇갈린다. 낙관론의 근거는 ‘구조 변화’다. 과거 호황이 기기 교체 수요였다면, 이번엔 AI 데이터 축적이 수요를 스스로 키운다. 장기 공급계약도 확산됐다.
스위스 UBS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중론도 만만찮다. 가격 급등이 되레 수요를 누를 수 있어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메모리값 상승으로 올해 PC와 스마트폰 출하량이 각각 10.4%, 8.4% 줄 것으로 봤다.
변수는 또 있다. 정부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용인에 이어 광주에도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는다. 호황을 전제로 한 증설이다. 다운사이클이 겹치면 설비 과잉과 감가상각 부담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29년 공급 증가는 정해진 상수이고, 변수는 AI 수요”라고 말한다.
정부는 ‘수출 5대 강국’ 도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1000억달러 신기록의 절반이 한 품목, 그것도 가격에 기댄 실적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축포의 화력이 큰 만큼, 쏠림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