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 만의 3%대 물가, 진앙은 중동 유가

석유류 24.2%↑로 전체 물가 0.92%p 견인…항공료·서비스로 2차 확산

생활물가 3.3%로 2년 1개월 만 최대…7월 금통위 인상론에 무게

5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1% 올랐다. 2024년 3월 이후 2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2%대에 머물던 물가가 한 달 만에 0.5%포인트 뛰며 3%대로 올라섰다.

범인은 분명하다. 중동전쟁발(發) 국제유가다. 석유류 가격이 1년 새 24.2% 치솟으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문제는 기름값이 주유소 영수증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공권부터 빨랫값까지, 유가는 경제 곳곳으로 스며든다.

◇ 2%대 물가를 3%대로 밀어올린 힘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물가지수는 119.92로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물가 흐름은 지난해 12월 2.3%에서 올 1·2월 2.0%로 떨어졌다가 3월 2.2%, 4월 2.6%를 거쳐 단숨에 3%대에 올라섰다.

가속 페달을 밟은 건 국제유가다.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 결렬 끝에 지난 2월 28일 전쟁에 돌입한 뒤, 원유 시장은 호르무즈 해협(중동 원유 수송의 길목) 봉쇄 우려에 출렁여 왔다.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6월 1일 배럴당 94.98달러로 마감했다. 이 충격이 석유류 물가를 24.2% 끌어올리며, 전체 물가 상승분 가운데 0.92%포인트를 책임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 기름값은 영수증에 머물지 않는다

유가 충격이 무서운 이유는 번지는 경로가 넓어서다. 1차 충격은 직접적이다. 휘발유가 23.1%, 경유가 33.3% 뛰었다. 둘 다 2022년 7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2차 충격은 한 다리 건너 퍼진다. 대표 사례가 항공료다. 유가가 오르자 항공사가 항공권에 얹는 유류할증료(연료비 변동분을 운임에 반영하는 추가 요금)가 인상됐고, 국제항공료는 33.5% 급등했다.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이다.

석유를 원료로 쓰는 품목도 줄줄이 올랐다. 엔진오일 교체료가 14.0%, 세탁료가 11.3%, 주택수선재료비가 5.0% 상승했다. 그 결과 서비스 물가는 2.8%, 공업제품은 4.2% 올랐다. 기름 한 방울이 비행기표와 빨랫값까지 흔든 셈이다.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에서 유가 상승이 곧장 생활 곳곳으로 전이되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 아직은 유가발(發), 그러나 체감은 이미 따갑다

그렇다면 물가 불안이 전방위로 번진 걸까. 데이터처 판단은 신중하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가공식품 상승 폭이 둔화하고 농·축·수산물 흐름을 고려하면 중동전쟁 영향이 아직 다른 분야로 확대되진 않은 것 같다”면서도 “공급 측면의 시차를 고려하면 하반기를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공식품은 0.8% 오르는 데 그쳤다.

농·축·수산물은 2.2% 올라 상승 전환했다. 지난해 같은 달 농산물이 4.7% 내렸던 기저효과에 최근 고온으로 출하량이 줄어든 탓이다. 갈치(15.1%)·쌀(13.5%)·달걀(10.2%)이 많이 올랐지만, 양배추(-43.9%)·무(-27.5%)·양파(-18.5%)는 큰 폭으로 내려 품목별 온도 차가 컸다.

하지만 장바구니 체감은 다르다. 자주 사는 품목으로 구성돼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3.3% 올랐다. 2024년 4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대다. 에너지·식료품을 뺀 근원물가(OECD 기준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도 2.5% 올라, 일시적 요인을 걷어낸 밑바탕 물가 압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시사했다.

◇ 한은의 금리 시계, 7월을 향한다

이 지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은행이 긴축(기준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고 있어서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 5월 28일 첫 금융통화위원회 뒤, 물가·성장·환율·부동산 모두 갈 길이 명확하다며 인상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기준금리는 연 2.50%로 동결됐지만, 6개월 뒤 조건부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에서는 3.00% 전망이 가장 많았다.

한은은 이미 올해 물가 전망치를 2.2%에서 2.7%로,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6%로 올려 잡았다. 신 총재가 “기대인플레이션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 생활물가지수가 다시 3%대로 뛴 만큼, 인상 명분은 두꺼워졌다. 여기에 원화 약세도 수입 물가를 자극한다. 5월 28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502.8원으로 마감해 1500원 선을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다음 금통위가 열리는 7월 16일을 인상 시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변수는 여전히 유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제유가가 2분기 배럴당 100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간다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유가 상승이 올해 물가를 1.2%포인트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Daum

기름값의 한 자릿수 등락이 금리 결정까지 흔드는 구조다. 하반기 물가의 향방은 결국 호르무즈 해협 너머에서 갈린다. 중동의 포성이 멎지 않는 한, 지갑도 금리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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