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도 안 돼 3배…’재평가의 시작일까? ‘버블의 끝물’일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걸린 한국 증시
50.4%.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회사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28일 기준 사상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시가총액 3위 SK스퀘어와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더하면 55%다. 코스피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반도체 두 회사다.
같은 날, 코스피는 또 신기록을 썼다. 8228. 장중엔 5% 넘게 치솟아 8457까지 갔다. 개장 직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주가가 너무 빨리 오를 때 프로그램 매수 주문을 5분간 멈춰 세우는 안전장치다. 오르는 걸 막아야 할 만큼 거셌다.
그런데 그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835개 종목 가운데 오른 건 72개뿐이었다. 728개가 떨어졌다. 열에 아홉이 마이너스였다. 지수는 사상 최고. 투자자 대부분은 손실. 이 모순이 지금 한국 증시다.
2년 만에 3배
시계를 되감아보자. 코스피가 3000을 처음 넘은 건 2021년이다. 거기서 4000까지 가는 데 4년이 걸렸다. 그 4000을 찍은 게 지난해 10월이다.
그다음부터가 비현실적이다. 2026년 1월 5000. 2월 6000. 5월 6일 7000. 5월 15일 8000. 4000에서 8000까지, 단 7개월. 한국 증시 역사에 이런 속도는 없었다.
연초 대비 상승률은 91%.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압도적 1위다. 닷컴 버블 직전인 1999년 나스닥100의 1년 상승률(102%)에 맞먹는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이 숫자가 반갑지만은 않다.
돈은 넘친다. 주식을 사려고 증권계좌에 넣어둔 고객예탁금이 2024년 말 52조 원에서 2026년 5월 126조 원으로 불었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젠 안 사면 손해 보는 분위기다. 빚을 내 들어온 사람도 많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려는 사람은 망설인다. 꼭지가 아니냐는 불안 때문이다.
그 불안의 정체를 뜯어보면, 결국 두 회사로 돌아온다.
왜 둘만 오르나
답은 인공지능(AI)이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AI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 돈을 쏟는다. AI 서버에는 고성능 메모리가 필수다. 특히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여러 개의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를 한꺼번에 빠르게 처리하는 칩이다. 이걸 만드는 곳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다.
주문이 밀려든다. 칩값이 뛴다. 메모리 회사는 한번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공장 짓는 데 든 고정비가 워낙 커서, 가격이 그 선만 넘으면 추가 매출이 거의 그대로 이익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 변화가 더해졌다. 빅테크들이 반도체 회사와 3~5년짜리 장기공급계약(LTA)을 맺기 시작했다. 그동안 메모리는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오는 ‘사이클 산업’이었다. 이 계약이 그 변동성을 깎아낸다.
지난밤 미국에서 메모리 3위 마이크론 주가가 하룻밤에 19% 폭등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목표주가를 3배로 높였다. 이유는 한 줄이었다. “메모리는 더 이상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 구조적 성장 산업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 논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옮겨붙었다고 설명한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다. 대만 TSMC, 삼성전자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 번째다. 두 회사 합산 비중은 지난해 말 34%에서 50%로 뛰었다.
외국계는 “더 간다”
흥미로운 건 해외 큰손들의 시각이다. 거품을 경계하기는커녕, 목표치를 줄줄이 올린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8000에서 9000으로 높였다. 한국을 아시아·태평양에서 가장 확신하는 시장으로 꼽았다. 2026년 한국 기업 이익이 300% 늘 것으로 봤다. 노무라는 1만~1만1000을 제시했다. 모건스탠리는 강세 시나리오에서 1만, JP모건도 최대 1만을 열어뒀다.
국내 증권사도 가세했다. 삼성증권 1만1000, 현대차증권 1만2000, 유안타증권 1만1600, LS·SK·KB증권 모두 1만 선 안팎이다. ‘코스피 1만 시대’가 증권가의 공식 전망이 됐다.
근거는 역설적이게도 ‘아직 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배 미만이다. 선행 PER은 주가가 1년 뒤 예상 순이익의 몇 배인지 보는 잣대다. 같은 AI 수혜주인 엔비디아는 22배, 파운드리 1위 TSMC는 19~20배다. 한국 두 회사는 그 3분의 1 값에 거래된다. 이익은 폭증하는데 주가가 못 따라간다는 논리다.
여기에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받친다. 한국 주식이 실적에 비해 늘 싸게 거래되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깨려는 정책이다. 2024년 도입됐고, 2026년 2월 세법 개정으로 한 발 더 나갔다. 배당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세제 혜택을 준다. 권고에 그친 일본보다 강하다. 우량 기업을 추린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출시 이후 130% 올랐다.
그런데, 경고음
그런데 같은 시장을 정반대로 읽는 시선이 있다.
먼저, ‘K자 양극화’다. 알파벳 K처럼 한쪽은 위로, 한쪽은 아래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반도체·자동차·방산 같은 수출주는 치솟지만, 내수·철강·석유화학·제약은 제자리거나 마이너스다. 지난해 연저점 이후 삼성전자는 479%, SK하이닉스는 1259% 올랐다. 코스피 평균(253%)을 압도한다. 반면 940개 상장사 중 289개는 그 불장에서도 주가가 떨어졌다.
심각한 건 빚이다. 빚내서 산 주식 잔고(신용거래융자)가 36조 원을 넘어 사상 최고를 찍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신용잔고는 올해 들어 각각 154%, 278% 폭증했다. 지수가 출렁이자 반대매매가 이틀에 1,500억 원 넘게 터졌다. 빌린 돈으로 산 주식을 증권사가 강제로 팔아치우는 것이다. 떨어지면 더 떨어지게 만드는 불쏘시개다.
투자 위험성은 계속 커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2배로 따라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막 상장됐다. 오를 땐 2배로 벌지만, 내릴 땐 2배로 잃는다. 단일 종목이라 하루 최대 손실이 60%까지 열린다. 장 마감 무렵 기계적으로 따라 사고파는 거래가 변동성을 키운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한국형 VKOSPI는 위험 구간인 71까지 치솟았다.
가장 무거운 경고는 역사에서 나왔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금 쏠림이 거품 후반의 전형이라고 판단했다. 1929년 대공황 직전의 항공·라디오주, 1972년 미국의 ‘니프티 피프티'(50개 우량주 독주), 2000년 닷컴주. 모두 소수 주도주에 극단적으로 쏠렸다. 훗날 ‘쏠림 해소’가 시작될 때, 그것은 ‘반가운 확산’이 아니라 ‘버블 붕괴’의 전조였다.
외국계도 일제히 낙관만 하진 않는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스티브 브라이스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론이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차익 실현을 권했다. 외국인은 이미 14거래일째 순매도다.
거시 환경도 편치 않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집값과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고수한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6%로 올리면서도 물가 전망을 2.7%로 함께 높였다. 해외 기관들은 한은이 3분기부터 금리를 최대 네 차례 올릴 가능성까지 본다. 금리가 오르면 빚으로 산 주식부터 흔들린다.
국민연금이라는 변수
그래도 아직 “더 간다”쪽을 받쳐주는 재료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수급 쪽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대폭 높였다. 증시가 오르면서 보유 주식 평가액이 불어나자, 규칙을 현실에 맞춘 것이다. 국민연금은 코스피 시총의 8~9%를 쥔 최대 장기 투자자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만 260곳이다.
목표 비중이 낮으면, 비중이 넘칠 때마다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 시장이 두려워한 ‘연금발 매도 폭탄’이다. 이번에 목표를 높이고 하루 매도 한도까지 줄였다. 개미들이 한숨 돌렸다.
다만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가 관건이다. 국민연금은 2021년에도 비슷하게 매도 허용 범위를 넓혔다. 이듬해 글로벌 긴축이 닥쳤고, 국내 주식 수익률은 -22.76%로 주저앉았다. 단기 수급과 장기 원칙 사이의 외줄타기다.
결국 하나에 달렸다
강세론과 약세론은 사실 같은 데이터를 본다. 삼전닉스가 시총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를 어떻게 해석할까. 한쪽은 “한국이 글로벌 AI 공급망의 심장에 편입된 증거”라 읽는다. 다른 쪽은 “두 회사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무너지는 폭탄”이라 읽는다. PER 6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저평가의 증거, 누군가에겐 곧 깎일 실적 기대치다.
차이는 단 하나다. AI 투자 사이클이 언제까지 가느냐. 빅테크의 AI 설비투자가 이어지는 동안엔 두 회사 실적이 받친다. 그 실적이 주가를, 주가가 지수를 끌어올린다. 반대로 투자가 둔화하거나 메모리 업황이 고점을 친 신호가 나오면, 그 50% 비중은 곧장 독이 된다. 저평가 논리도 함께 무너진다.
올해 1월, 코스피가 5000을 향하던 때 한 신문 사설은 이렇게 적었다. “실체 없는 기대 위에 쌓은 지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때 코스피는 4500이었다. 지금은 8000이다. 그사이 실체는 분명히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은 진짜다.
문제는 그 실체가 시장 전체를 떠받칠 만큼 넓은가다. 지수는 사상 최고인데 열 종목 중 아홉이 떨어지는 시장. 그 한 줄이 모든 질문을 압축한다.
8000은 도착점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두 회사에 얼마나 깊이 묶였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영광을 비출지, 위험을 비출지는 AI라는 단어 하나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