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강해질수록 기업은 흔들린다…조만장자의 역설

스페이스X 상장으로 순자산 9710억달러

12세에 게임 팔던 소년이 세운 우주·AI 제국

1990년대 중반 미국 팰러앨토의 작은 임대 사무실. 20대 청년 한 명이 평범한 컴퓨터 위에 커다란 플라스틱 구조물을 씌웠다. 투자자 눈에 작은 슈퍼컴퓨터처럼 보이게 하려는 ‘연출’이었다. 그가 갓 차린 첫 회사 ‘Zip2’는 1999년 컴팩에 3억700만달러에 팔렸고, 청년은 7% 지분으로 2200만달러를 쥐었다.

31년이 흐른 2026년 6월 12일. 그 청년 일론 머스크(54)는 인류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단어의 주인공이 된다. 조(兆)만장자, ‘trillionaire’. 1조달러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막대한 부가 한 사람에게 쏠려 있다는 사실은 가장 큰 물음표도 함께 띄운다.

◇ 우주로 부를 쏘아 올린 남자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나스닥에 상장한다. 공모가는 주당 135달러, 기업가치는 약 1조7700억달러로 평가된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는 12일 그의 순자산을 9710억달러(1476조원)로 집계했다. 스페이스X 지분이 6900억달러, 테슬라 지분이 2790억달러다(NYT). 주가가 조금만 더 올라도 1조달러를 넘는다.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테슬라·스페이스X에 더해 뇌 임플란트 기업 뉴럴링크, 터널 기업 보링컴퍼니, AI 기업 xAI를 세웠다. 세계 2위 부자 래리 페이지(구글 공동창업자) 자산의 3배가 넘는다.

◇ 초당 992달러, 그러나 두 번 쫓겨났다

WSJ 분석에 따르면 그는 첫 창업 이후 31년간 시간당 약 360만달러, 초당 992달러를 벌었다. 미국 가계 중간소득 기준으로 한 가구가 1100만년을 모아야 닿는 액수다.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12세 때 직접 만든 게임 ‘블래스타’를 한 잡지에 약 500달러에 팔았다. 2002년 스페이스X를 세울 땐 로켓 값이 비싸 러시아까지 날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사려 했다. 두 차례 모스크바를 찾았지만 빈손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직접 로켓 회사를 차렸다.

의외의 이력도 있다. 머스크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두 번 밀려났다. Zip2에선 이사회가 그의 CEO 임명을 반대했고, 페이팔의 전신 X.com에선 이사회가 그를 해고했다. 펜실베이니아대 학위도 본인은 1995년에 받았다고 말해왔지만, 학교 기록상 실제 수여는 1997년이었다. 2021년엔 방송에서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자폐 스펙트럼)을 가졌다고 밝혔고, 우울증 치료를 위해 케타민을 복용한다고 인정했다.

◇ “2026년, 인간보다 똑똑한 AI 온다”

머스크의 시선은 늘 앞을 향한다. 그는 최근 대담에서 “가장 똑똑한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2026년, 늦어도 2027년 초 등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2029~2030년이면 “AI 하나가 80억 인류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뛰어날 것”이라고도 했다. 폭증하는 전력은 태양광과 배터리로, 노동력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로 푼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이번 상장의 수혜는 머스크만이 아니다. 스페이스X 임직원 약 4400명이 백만장자가 되고, 그중 400명가량은 1억달러 이상을 손에 쥔다. 반대로 초창기 자사주를 식당 상품권으로 바꿨다가 후회하는 직원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 그가 강해질수록 기업이 흔들린다

화려한 성과의 이면엔 구조적 약점이 있다. 시장은 이를 ‘키맨 리스크(key man risk)’라 부른다. 핵심 인물 한 명에게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묶여 있을 때 생기는 위험이다.

머스크의 정치 참여 사례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처음에 그의 정치 참여는 호재였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24년 12월 테슬라 주가는 463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규제 완화 기대였다. 그러나 그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연방 예산을 난도질하고 유럽 극우 정당을 공개 지지하자, ‘머스크 프리미엄’은 ‘머스크 리스크’로 뒤집혔다.

타격은 숫자로 드러났다. 2025년 1월 프랑스의 테슬라 신규 등록은 1년 전보다 63% 급감했다. 독일도 59% 줄어 2021년 7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1~4월 EU 판매는 38.7% 감소했고, 간판 모델Y는 48.4% 빠졌다. 1분기 주당순이익은 0.27달러로 1년 새 40% 급감했고, 매출은 9% 줄어든 193억달러에 그쳤다.

주가는 그의 입에 따라 출렁였다. 트럼프와 SNS에서 충돌한 2025년 6월 5일 테슬라는 두 자릿수로 폭락했다. 7월 신당 창당을 선언한 날엔 6.8% 내린 293.94달러로 마감해, 하루 만에 시총 약 680억달러(약 93조원)가 사라지고 1조달러 선이 무너졌다.

지배구조도 의존도를 키운다. 머스크는 상장 후에도 스페이스X 의결권 84%를 그대로 쥔다. 테슬라에선 2025년 11월 최대 1조달러 규모 보상 패키지가 승인됐다. 앞서 2018년 책정된 약 550억달러 보상안이 “주주에게 불공정하다”며 2024년 델라웨어 법원에서 무효화됐지만, 부의 집중 구조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 빛과 그림자, 같은 얼굴

그림자는 시장에만 있지 않다. 머스크는 DOGE에서 미 국제개발처(USAID) 지원을 끊었고, 이 여파로 어린이 등 다수가 숨졌다는 추정이 제기됐다. 빌 게이츠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2025년 5월). 트럼프 취임식에서 보인 손동작은 ‘나치식 경례’ 논란을 불렀다. 유엔이 ’60억달러면 4200만명을 구한다’며 기부를 요청하자, 머스크는 ‘증명하면 내겠다’고 받아쳤고, 유엔이 실제 계획서를 냈지만, 머스크는 그 돈을 기아 기구가 아닌 자기 재단에 넣었다.

머스크에 대한 의존성은 양날의 칼이다. 과감한 혁신과 투자를 위한 빠른 의사결정의 원천이지만, 그가 지친다면? 그가 아프다면? 그의 판단이 틀리다면? 기업은 즉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가 빚어낸 비전과 서사는 주가 프리미엄의 원천이지만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은 그를 “우리 시대의 에디슨”이라 했고, 반대편은 “과두정치인”이라 부른다. 같은 인물을 향한 두 평가가 이토록 멀다.

인류 첫 조만장자의 가장 큰 약점은 경쟁사도, 중국 전기차도 아닐지 모른다. 1조달러짜리 기업들의 운명이 한 사람의 트윗과 기분, 정치적 변덕에 묶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후계도, 견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제국이 커질수록, 그 약한 고리도 함께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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