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연속 동결 끝낸 한은, 금리인상 예고

신현송 총재 “늦지 않게 인상”…물가·집값·빚투에 긴축 신호

한국은행이 방향을 틀었다. 8번 연속 멈춰 세웠던 금리다. 그 금리를 이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창립 76주년 기념식에서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취임한 신 총재가 인상 시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건 처음이다. 시장이 익숙해진 ‘동결 모드’가 끝나가고 있다. 한은의 무게중심이 성장 방어에서 물가 잡기로 옮겨갔다는 신호다.

◇ 8연속 동결의 끝, 물가가 흔들렸다

한은 기준금리는 현재 연 2.50%다. 한은은 2024년 하반기부터 경기를 떠받치려 금리를 1%포인트가량 내렸다. 이후 8번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내리 동결했다(한국은행).

변화의 조짐은 지난달 드러났다. 5월 28일 신 총재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기준금리를 정하는 한은 최고 의결기구)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왔다.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동결’이라는 평가가 붙은 이유다.

물가가 그 배경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뛰었다. 4월 2.6%에서 한 달 만에 0.5%포인트 올랐다(한은 물가상황점검회의, 6월 4일). 한은 목표치 2%를 크게 웃돈다. 중동전쟁발 공급 충격이 유가와 수입물가를 밀어 올린 결과다.

◇ 상충이 사라졌다…세 갈래가 한 곳을 가리킨다

통화정책은 늘 딜레마와 마주한다.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성장과 빚 부담이 짓눌린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어렵다. 이 ‘상충 관계’가 그동안 중앙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신 총재는 지금은 다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성장, 물가, 금융안정 상황은 통화정책 측면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며 “지금은 그런 상충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세 갈래가 모두 긴축을 향한다는 의미다.

열쇠는 성장이다. 반도체 경기 호조가 이어지고,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따른 세수 확충과 내수 회복이 성장세를 받친다는 게 신 총재의 판단이다. 성장이 버텨주니 금리를 올려도 경기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계산이 깔렸다. 반대편에서는 물가가 오르고, 수도권 집값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과열 신호를 낸다. 금리를 올릴 명분이 차곡차곡 쌓였다.

◇ 금리로 물가 잡고, 약자는 재정으로

신 총재는 물가가 약자를 더 때린다는 점을 짚었다. 체감물가와 가까운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를 웃돌며 가계의 기대인플레이션(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예상 심리)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기대가 굳으면 실제 물가는 더 오른다. 선제 대응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는 “물가 상승 부담은 저소득층에서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난다”며 “선제적인 물가 안정 노력은 이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는 길”이라고 했다. 물가를 잡는 일이 곧 약자 보호라는 논리다.

딜레마는 남는다.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을 키운다. 신 총재는 여기서 선을 그었다. “이런 어려움에 대한 선별적 지원은 재정정책을 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물가 안정은 금리로, 약자 보호는 재정으로 역할을 나눈 것이다.

◇ 원고에 없던 ‘기초가치’…환율을 다시 보다

환율 대목에서 묘한 장면이 나왔다. 신 총재는 기념사 원고에 ‘중동 사태로 환율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되면 수입물가를 통해 물가 압력을 가중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대목을 읽지 않았다. 대신 ‘기초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경상수지(외국과의 상품·서비스 거래 등으로 오간 돈의 차이) 흑자가 기업의 납세와 국내 투자를 통해 원화 수요를 늘리면서, 원/달러 환율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수급 쏠림이 풀리면 원화가 균형점을 찾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실은 아직 무겁다. 원/달러 환율은 6월 10일 1520원대에서 거래됐다. 최근 1년간 원화 가치는 11% 가까이 떨어졌다(트레이딩이코노믹스). 한은과 금융감독원은 14년 만에 외환 공동검사에 들어갔다.

◇ 다음 금통위까지, 무엇을 볼까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는 7월 16일이다. 시장은 인상 소수의견 확대와 점도표(금통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 분포도) 상향에 주목한다(신한투자증권 5월 보고서). 인상이 현실화하면 2022년부터 이어진 완화 기조가 방향을 튼다.

변수는 곳곳에 있다. 중동전쟁의 전개, 1520원대 환율, 1분기 말 1993조원을 넘어선 가계신용(한국은행)이 대표적이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와 환율은 진정되지만 빚 부담은 커진다. 신 총재가 ‘재정과의 공조’를 거듭 강조한 이유다.

성장의 정보기술(IT) 편중도 부담이다. 신 총재는 “부문 간 격차가 여전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세대·계층 간 양극화 완화를 주문했다. 그는 “햇볕이 비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인공지능(AI)발 격변기일수록 미래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시계는 인상 쪽으로 기울었다. 남은 질문은 속도와 폭이다. 물가와 빚, 환율 사이에서 신 총재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가 하반기 한국 경제를 가를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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