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공습 취소·주말 서명 시사에 국제유가 급락
종전 최종 서명·인플레 재점화 변수 남아…랠리 토대는 취약
같은 날, 정반대 신호가 터졌다.
11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기업이 출하하는 도매 물가)가 1년 전보다 6.5% 올랐다. 3년 6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이다(미 노동부). 물가 경보음이다. 그런데 뉴욕증시는 폭등했다. 나스닥지수는 2.54% 뛰었다.
물가가 튀는데 주가가 오른다. 왜? 답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히면서다.
◇ 오전엔 위협, 오후엔 취소…유가가 키를 쥐었다
이번 랠리의 방아쇠는 국제유가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2월 말 전쟁에 들어가 3개월 넘게 충돌해 왔다(한국일보). 전장의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길목이다. 이란이 이곳을 막으면 유가가 치솟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오늘 밤 이란을 강하게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유가가 급등했다. 시장은 긴장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그는 돌변했다. 트루스소셜에 “이란 최고지도부가 승인했다”며 공습 취소를 알렸다. 백악관에선 “주말 유럽에서 서명식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유가가 꺾였다. 브렌트유는 2.92% 내린 90.38달러,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58% 내린 87.71달러에 마감했다.
◇ 유가 한 방울이 주가로 가는 ‘4단계 길’
유가 하락은 어떻게 증시를 끌어올렸나. 경로는 네 단계다.
1단계, 유가가 내린다. 2단계, 인플레이션 기대가 식는다. 에너지는 물가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3단계, 물가 압력이 줄자 미 국채로 매수세가 몰린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하루 10bp(1bp=0.01%포인트) 떨어진 4.45%를 기록했다.
4단계가 핵심이다. 국채 금리가 내리면 주식 몸값은 오른다.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쓰는 할인율이 낮아지는 까닭이다. 특히 먼 미래 이익에 기대는 기술주가 크게 반응한다. 나스닥이 가장 많이 뛴 이유다. 위험자산 선호가 살아나며 달러도 0.3% 약해졌다.
◇ 반도체가 끌고, 스페이스X가 밀었다
종목 장세도 불을 지폈다.
조정을 받던 반도체주가 강하게 반등했다. 미 주요 반도체 30개 종목을 묶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약 8% 급등했다. 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인텔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투자의견을 ‘매수’로 두 단계 올리며 9% 가까이 뛰었다. AMD와 마이크론도 함께 올랐다.
12일 나스닥에 데뷔하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온기를 더했다. 공모가는 주당 135달러, 기업가치는 1조7700억달러(약 2700조원)다. 조달액 750억달러(약 114조원)는 2019년 사우디 아람코(256억달러)를 넘어선 IPO(기업공개) 사상 최대 규모다(블룸버그). 반면 오라클은 8.5% 내렸다. AI 인프라 확충을 위한 증자·채권 발행 계획이 과잉 투자 우려를 불렀다.
◇ 랠리가 딛고 선 두 개의 살얼음
그러나 상승의 토대는 단단하지 않다. 두 가지 불씨가 남았다.
첫째, 종전은 아직 ‘서명 전’이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최종 승인이 남았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이후 ‘타결 임박’을 여러 차례 주장했고, 이란은 번번이 부인했다(뉴욕타임스). 이날도 미군은 미사일 발사 3시간 전 작전을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NBC). 합의가 깨지면 유가는 다시 튄다.
둘째, PPI가 보낸 경고다. 5월 상승분의 80%가 에너지에서 나왔다(인베스팅닷컴). 휘발유 도매가는 23.4% 뛰었다. 도매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옮겨붙는다. 일부 투자자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울리케 호프만-부르차르디 UBS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결국 외교가 승리한다는 게 기본 시나리오”라며 “투자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견고한 펀더멘털과 실적 성장에 다시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이 베팅의 전제는 ‘외교의 성공’이다.
시장은 종전에 베팅했다. 그러나 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주말 유럽의 서명식, 혹은 그 무산이 다음 방향을 가른다. 랠리의 운명은 증시가 아니라 협상장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