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은 사랑과 유혹, 때로는 행복의 상징입니다. 1985년 임병수가 부른 ‘아이스크림 사랑’에서, 2020년 블랙핑크와 2024년 전소미가 나란히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을 단 노래에서, 이 달콤하고 차가운 디저트는 한결같이 설렘의 은유로 등장합니다.
영화 속 연인의 데이트에, 입가에 잔뜩 묻혀가며 빨아 먹는 아이의 얼굴에, 땀 흘린 여름날 친구들과 나눠 먹던 추억에 아이스크림이 빠지지 않는 이유죠.
아이스크림이 로맨틱한 상징으로 굳은 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입니다. 1950년대 소비문화가 꽃피며 할리우드 영화와 광고가 아이스크림을 사랑의 기호로 즐겨 썼습니다.
1950년대는 미국 가정의 80% 이상이 냉장고를 갖춘 시기이기도 합니다. 차가운 간식을 일상으로 즐길 ‘냉장 인프라’가 비로소 마련된 겁니다.
달콤한 얼음의 탄생
그렇다면 이 ‘달콤한 얼음’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달콤한 얼음의 탄생기원은 고대까지 올라갑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꿀과 과일을 섞은 눈을 즐겼고, 로마의 네로 황제는 알프스에서 가져온 눈에 과일 시럽을 부어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본격적으로 이를 사랑한 이들은 중동의 이슬람 귀족이었습니다. 고산지대의 천연 눈·얼음에 과즙과 감미료를 섞은 ‘샤르바트(Sharbat)’를 즐겼는데, ‘음료’를 뜻하는 아랍어 ‘샤랍’에서 온 말입니다.
샤르바트는 7세기 이슬람 제국의 팽창과 함께 지중해로 퍼졌고, 9세기 시칠리아가 아랍에 정복되며 이탈리아 남부로 건너갔습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에트나 산의 눈으로 한층 차갑고 질감 있는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얼음을 긁어 과일 시럽을 더한 빙수 형태의 ‘그라니타(granita)’가 그것입니다.
이들은 눈을 지하 동굴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꺼내 썼습니다. 16세기경 이 디저트는 ‘셔벗(sherbet)’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퍼졌고, 우리가 ‘샤베트’라 부르는 빙과의 뿌리가 됩니다.
젤라토, 그리고 최초의 카페
오늘날과 같은 아이스크림은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모습을 갖춥니다. 르네상스의 중심이던 이 도시에서 요리는 하나의 예술이었고,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습니다.
1565년 무렵 건축가이자 요리사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메디치가의 만찬에서 우유와 크림을 더한 차가운 디저트를 선보입니다.
우유·설탕·달걀에 과일 향을 입히고 얼음과 소금으로 차갑게 굳힌 새로운 질감의 음식, 이탈리아어로 ‘얼린’을 뜻하는 ‘젤라토’였습니다.
그가 ‘젤라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1686년에는 시칠리아 출신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Francesco Procopio dei Coltelli)가 파리에 ‘카페 프로코프(Café Procope)’를 엽니다. 젤라토를 주력으로 내세운 이 카페는 볼테르·루소·디드로 같은 계몽 사상가들의 단골집이 되며 사교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은 곧 유럽 왕실의 별미가 됩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에 전용 주방을 두었다 하고, 영국 찰스 1세는 자신의 ‘크림 아이스’ 제조법을 국가 기밀처럼 다뤘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물론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718년 영국에서 나온 요리책 ‘미세스 메리 얼스의 조리법(Mrs. Mary Eales’s Receipts)’에 아이스크림 제조법이 처음 활자로 공개되니까요.
미국에서 시작된 대중화
귀족의 별미를 모두의 간식으로 끌어내린 무대는 미국이었습니다.
1744년 메릴랜드 주지사 토머스 블레이든의 만찬에 아이스크림이 올랐다는 기록이 미국 사교계 첫 등장으로 꼽힙니다.
조지 워싱턴은 여름이면 거금을 들여 얼음을 사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고, 토머스 제퍼슨은 1802년 백악관에서 손님에게 아이스크림을 냈습니다.
전환점은 산업혁명이었습니다. 1843년 낸시 존슨이 손잡이를 돌려 크림을 젓는 수동식 제조기를 발명해, 가정에서도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1851년에는 볼티모어의 우유업자 제이콥 퍼셀이 남는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상업 공장을 엽니다. 표준화된 공정과 낮은 가격, 이것이 대중화의 진짜 엔진이었습니다.
20세기 들어 속도가 붙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콘’이 등장했고, 1920년대엔 냉장 기술 발전으로 아이스크림 트럭이 동네를 누볐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의 사기를 돋우는 간식으로 격상돼, 태평양 전선에 ‘아이스크림 바지선’이 띄워질 정도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서양 빙과’에서 삼강하드까지
한국이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1902년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 받아 맛본 것이 최초 기록으로, 고종은 이를 ‘서양 빙과’라 불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엔 일본인이 운영하는 빙과점에서 팔렸지만 서민에겐 닿기 어려운 고급품이었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주한미군 PX를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번졌습니다.
본격적인 국산 시대는 1962년에 열립니다. 삼강유지화학(현 롯데웰푸드)이 일본에서 들여온 최신 설비로 만든 ‘삼강하드’를 그해 7월 출시한 겁니다.
색소와 사카린을 탄 물을 얼린 ‘아이스케키’ 수준이던 빙과 시장에, 위생 공정으로 대량 생산한 우유 아이스크림이 등장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하드’가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굳었습니다. 1970년 해태제과의 ‘브라보콘’이 뒤를 이었고, 1980년대 후반 편의점이 퍼지면서 아이스크림은 24시간 언제든 살 수 있는 일상 간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편의점 냉동고, 그리고 줄어드는 시장
오늘날 대부분의 편의점은 입구에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둡니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게 배치해 충동구매를 부르는 자리죠.
따지고 보면 편의점 냉동고는 400년에 걸친 냉각 기술과 콜드체인(저온 유통망)이 도달한 가장 일상적인 종착점입니다.
귀족의 만찬에 오르던 별미가, 새벽에도 천 원 남짓에 집어 들 수 있는 간식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 빙과 시장은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유로모니터 집계로 2015년 약 2조 1300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1조 7000억 원대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입니다. 주 소비층인 어린이·청소년이 줄어든 데다, 식후 디저트 자리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내주고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세까지 겹친 탓입니다.
코로나19의 집콕 수요와 골목마다 들어선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2024년 기준 약 2000곳)에 힘입어 2023년 2조 원대를 회복했지만, 정체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활로는 바깥에 있습니다. K-푸드 열풍을 타고 아이스크림 수출은 2024년 9841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2025년엔 사상 처음 1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빙그레 ‘메로나’는 미국에서, 롯데웰푸드는 인도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하나씩 빨아 먹던 ‘하드’의 추억은 이제 세계인의 입맛으로 번지는 중입니다. 편의점 냉동고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 망설이는 그 잠깐의 행복이, 400년 역사의 끝에 우리가 선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