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클로 보안 결함 틈새 파고든 나노클로…180억 시드 투자 유치
모델 비용 2년 새 90% 폭락…”AI 구독 시대” 균열
오픈AI·나노코·엔비디아, 에이전트 인프라 3파전
“누가 더 똑똑하냐”가 아니라 “누구 위에서 돌리냐”의 싸움
300억원(2000만달러)을 거절했다.
코드를 처음 작성한 지 6주도 안 됐다. 완성된 제품도 아니었다. 그런데 빅테크들이 문을 두드렸다. 300억 원을 주겠다는 인수 제안도 있었다. 나노클로(NanoClaw)를 만든 나노코(NanoCo)의 공동창업자 가브리엘 코헨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더 큰 게 보인다.”
이 거절을 이해하려면, 오픈클로(OpenClaw)에서 시작해야 한다.
작년 말,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혼자 만든 오픈소스 프로젝트 하나가 세상을 뒤집었다. 챗봇이 아니었다. 질문에 답하는 AI가 아니었다.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웹을 검색하고, 파일을 수정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자율형 에이전트’였다.
깃허브에 코드가 올라오자 개발자들이 달려들었다. 별점(Star) 35만 개.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오픈소스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기록됐다. 지난 5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연례 개발자 행사 GTC 무대에서 오픈클로를 찬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입니다.” 리눅스(Linux)가 30년에 걸쳐 이룬 성과를 불과 몇 주 만에 뛰어넘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오픈클로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맥 미니(Mac Mini) 같은 저전력 PC에서 오픈클로를 돌리면 자체 AI 에이전트를 운영할 수 있었다. 개발자는 물론 비개발자조차 자신만의 맥미니를 돌리며 일하기 시작했다.
성공 스토리였다. 여기까지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오픈클로에는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모든 에이전트를 단일한 공유 프로세스에서 돌린다. 에이전트 하나가 뚫리면 시스템 전체가 뚫린다. 이메일, 캘린더, 클라우드 계정, 인증 정보까지 한꺼번에 노출된다.
실제 사고가 터졌다. 메타(Meta) 슈퍼인텔리전스 랩 연구원이 오픈클로 에이전트를 쓰다 개인 메일함을 통째로 날리는 사건이 있었다. 메타 내부에선 더 큰 사고도 발생했다. 한 엔지니어가 오픈클로를 활용한 사내 AI 에이전트를 사용해 질문에 답변을 구했는데, 에이전트가 그 답변을 공개 게시판에 무단으로 올렸다. 다른 직원이 이 답변에 따라 시스템 설정을 바꿨고 약 2시간 동안 권한 없는 직원들이 민감한 사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메타 내부 위험 등급 체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SEV1’이었다. 메타 측은 “사용자 데이터 유출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코드 문제도 있었다. 오픈클로 소스코드는 40만 줄을 넘어섰다. 기업 보안팀이 전체를 감사(Audit)하려면 몇 주가 걸린다. 검증이 안 되면 기업 도입이 안 된다. 보안 조사기관 히든레이어(HiddenLayer)의 2026년 보고서는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자율 에이전트가 기업 내 AI 관련 보안 침해의 8건 중 1건 이상을 차지한다.
나노클로를 개발한 가브리엘 코헨은 이 틈새를 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 개발자. 마케팅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중 오픈클로를 업무에 활용하려다 보안이 불안했다. 직접 고치기로 했다.
48시간이 걸렸다.
나노클로가 그렇게 나왔다. 핵심 로직은 500여 줄짜리 타입스크립트(TypeScript) 코드다. 보안 담당자가 8분이면 전체를 읽고 검증할 수 있다. 오픈클로(40만 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구조 자체가 다르다. 모든 에이전트를 격리된 컨테이너, 정확히는 독립된 마이크로VM(MicroVM) 안에서 구동한다. 에이전트 하나가 뚫려도 나머지는 멀쩡하다. 외부 API 인증 정보는 에이전트에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원CLI 러스트 게이트웨이(OneCLI Rust Gateway)’가 중간에서 요청을 검증한다. 이메일 삭제나 클라우드 수정 같은 민감 작업은 관리자 승인 없이 실행되지 않는다.
코헨은 이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능한 신입 직원이 초안을 작성할 수는 있지만, 관리자 승인 없이는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구조입니다.”
반응이 터졌다. AI 연구자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가 호평했다. 싱가포르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외무장관이 “나의 제2의 두뇌”라고 소개한 게시물이 퍼졌다. 다운로드 25만 건, 깃허브 별점 2만9000개. 코드를 처음 올린 지 6주도 안 됐을 때였다.
빅테크들이 움직였다. 인수 제안서가 날아왔다. 앞서 설명한 그대로다.
코헨은 거절했다. 단순한 인수합병으로 대기업 제품군에 편입되는 것보다, 모든 에이전트가 구동되는 독립적인 표준 플랫폼이 되는 게 중장기적으로 훨씬 이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시드 투자 라운드를 열었다. 밸리 캐피털 파트너스(Valley Capital Partners)가 주도했다. 컨테이너 기술의 표준인 도커(Docker),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버셀(Vercel), 기업용 협업 도구 먼데이닷컴(monday.com)이 전략적 투자자로 들어왔다. 허깅페이스(HuggingFace) CEO 클렘 들랑그도 엔젤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총 1200만 달러(약 180억 원)를 유치했다.
도커가 투자자로 들어온 건 주목해야 한다. 나노클로의 핵심 기술이 도커 기반 샌드박스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순한 재무 투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인프라 표준 전쟁에서 포석을 깐 것으로 본다. 이미 아마존, 구글, 메타, 액센추어 임원들이 나노클로를 실전 업무에 도입해 쓴다고 알려졌다.
산업 지형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는 2026년 말까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40%에 AI 에이전트가 내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 기준 5% 미만이었다. 1년 만에 8배다.
에이전트가 늘어날수록 보안 시장이 커진다. 엔비디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GTC 2026에서 기업용 보안 플랫폼 ‘네모클로(NemoClaw)’를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자사 칩을 에이전트 인프라 표준으로 굳히겠다는 계산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뿌려 운영체제 패권을 지킨 것과 같은 이치다.
나노클로의 나노코 역시 오픈소스와 상업화를 동시에 간다. 핵심 코드는 MIT 라이선스로 무료 공개한다. 대신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유료 통합 구축과 유지보수, 전문 엔지니어 파견 서비스로 수익을 낸다. 레드햇이 리눅스(Linux)로 구축한 것과 같은 공식이다.
AI산업은 새로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 AI 모델 비용이 제로를 향해 달린다. 경로는 세 갈래다.
첫째, LLM 오픈소스 모델이 독점을 깼다. 메타가 라마(LLaMA)를 공개했다. 구글이 제마(Gemma)를 풀었다. 무료로 쓸 수 있는 AI가 쏟아졌다. 오픈AI는 살아남기 위해 API 가격을 반복해서 내렸다. GPT-4급 모델 이용료는 2년 새 80~90% 폭락했다.
둘째, LLM 모델이 ‘갈아끼우는 부품’이 됐다. 오픈클로, 나노클로 같은 에이전트 프레임워크에 맞추는 것이다. 삼성 모니터 대신 LG 모니터를 꽂아도 되는 세상에서 모니터 가격이 내려가듯, LLM 모델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가격은 바닥으로 수렴한다.
셋째, 이제 AI는 집에서 돌아간다. 양자화(Quantization)라는 기술로 대형 AI 모델을 압축하면 90만 원짜리 맥 미니에서도 구동된다. 제마는 스마트폰 안에도 들어간다. 클라우드에 이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 추론 비용은 전기요금뿐이다. 사실상 제로다.
1990년대 인터넷 통신비가 분당 수백 원이었다. 지금은 월정액에 무제한이다. AI 모델 비용도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속도가 훨씬 빠를 뿐이다.
그런데 역설이 있다.
모델이 공짜가 될수록, 모델을 돌리는 하드웨어 값은 치솟는다. 무료 LLM 모델을 집이나 스마트폰으로 돌리려면 그게 맞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메모리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맥쿼리와 노무라증권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대해 각각 2026년 영업이익 100조 원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세 플레이어가 이 새로운 구조 앞에서 각자의 패를 꺼냈다.
오픈클로의 슈타인베르거는 오픈AI에 합류했다. 샘 올트먼 CEO가 “오픈클로를 독립적인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게 결정적이었다. 오픈클로는 비영리 재단 체제로 이관됐다. 오픈AI는 이 생태계를 끌어안으며 개발자 시장 장악에 나섰다.
나노클로의 코헨은 반대로 걸었다. 300억 원을 거절하고 180억 원을 모아 독자 노선을 탔다. 모델이 공짜가 되는 시대일수록, 그 모델을 안전하게 돌리는 인프라 레이어가 새로운 권력이 된다고 봤다. 어떤 칩에서도 돌아간다는 게 나노클로의 강점이다.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변수가 있다. 엔비디아다.
GTC 2026 무대에서 엔비디아는 기업용 보안 플랫폼 ‘네모클로’를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하나다. 네모클로가 에이전트 인프라 표준이 되면, 세상의 모든 에이전트가 엔비디아 칩 위에서 돌아간다. 보안 소프트웨어는 미끼다. 칩 판매가 목적이다.
이 공식은 역사에서 반복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깔아 윈도우 패권을 지켰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뿌려 모바일 광고 시장을 장악했다. 운영체제를 장악한 자가 그 시대를 장악했다.
엔비디아는 네모클로가 AI 시대의 운영체제를 장악하길 원한다. 개발자인 슈타인베르거와 코헨은 각각 오픈클로와 나노클로로 이 시장을 잠식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미 많은 개발자들이 열광한다. 시가총액 수천조 원 규모 엔비디아가 두 개발자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결국 세 갈래 전쟁이다.
오픈클로와 오픈AI는 개발자 생태계와 모델 플랫폼 패권을 노린다. 나노클로와 나노코는 하드웨어 독립을 무기로 보안 특화 인프라를 파고든다. 네모클로와 엔비디아는 칩과 소프트웨어를 한 묶음으로 묶어 수직 통합을 완성하려 한다.
AI 에이전트가 쏟아지는 시대. 진짜 싸움은 ‘누가 더 똑똑한 에이전트를 만드느냐’가 아니다. ‘그 에이전트를 누구 위에서 안전하게 돌리느냐’다.
인프라 표준 전쟁이 시작됐다. 아직 승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