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사람] 피터 베넨슨, 65년째 꺼지지 않은 촛불

1961년 5월 28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출범

1960년 11월, 런던 지하철. 출근길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신문을 펼쳤다. 외신면 한 단짜리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카페. 코임브라대 학생 둘이 “자유를 위하여”라며 건배했다는 이유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종점 한참 전에 지하철에서 내렸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6개월 뒤. 1961년 5월 28일, 그는 영국 일간지 옵저버에 한 편의 기고문을 실었다. 제목은 ‘잊혀진 수감자들(The Forgotten Prisoners)’. 65년 전 오늘, 국제앰네스티는 그렇게 출발했다.

분노한 변호사, 운동을 만들다

피터 베넨슨(1921~2005)은 러시아계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플로라 솔로몬은 사회 운동가였다. 그는 16세 때 스페인 내전 고아 구호에 나서며 활동가의 길에 발을 디뎠다. 옥스퍼드대 발리올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정보부에서 암호 해독 임무를 맡았다. 종전 뒤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50년대부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프랑코 독재정권의 노동조합원 재판에 영국 노조회의 파견 참관인으로 들어갔다. 헝가리 민주화 운동도 지원했다. 영국 법률 개혁 단체 ‘저스티스(JUSTICE)’도 그가 만들었다. 앰네스티는 그의 40세 작품이다.

한 편의 신문 기고가 일으킨 파도

1961년 5월 28일자 옵저버. 베넨슨의 글은 단순했다.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인종 때문에 감옥에 갇힌 6명의 ‘양심수(prisoners of conscience)’를 소개했다. 독자에게 그들의 석방을 위해 정부에 편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글은 곧 프랑스 르몽드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주요 언론에 번역돼 실렸다.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이 동참 의사를 보내왔다.

처음엔 1년 한시 조직이었다. 명칭도 ‘1961년 사면을 위한 호소(Appeal for Amnesty 1961)’였다. 한 해를 채우기 전 회원과 지부가 7개국으로 확장됐다. 1962년 조직 이름이 ‘국제앰네스티’로 바뀌었다

65년이 지난 지금. 앰네스티는 회원과 지지자 1000만 명, 150개국에서 활동하는 세계 최대 민간 인권단체다. 1977년 노벨평화상, 1978년 유엔인권상을 받았다.

성과는 숫자로 가늠하기 어렵다. 앰네스티가 직접 석방을 도운 양심수만 수만 명에 이른다. 1980년대 동유럽 민주화, 1990년 넬슨 만델라 석방, 5·18 민주화운동과 한국 양심수 구명 운동까지 앰네스티가 깊이 개입했다. 베넨슨이 처음 쓴 ‘양심수’라는 용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

“촛불 하나가 어둠보다 낫다”

베넨슨의 철학은 단순했다. 강했다.

첫째는 보편성이다. 그는 냉전 한복판에서 동서 진영 양쪽의 양심수를 함께 다뤘다. “앰네스티가 어느 한 나라, 이념, 신조의 통제 아래 놓이면 본래 목적을 잃는다.” 1961년 자신이 펴낸 책 ‘박해 1961’ 서문에 그가 적은 말이다. 좌우 양쪽에서 비판이 쏟아졌지만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둘째는 비폭력이다. 무력 투쟁에 가담한 정치범은 사면 대상에 넣지 않았다. 이 원칙 때문에 무장 투쟁기의 넬슨 만델라조차 초기 양심수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셋째는 평범한 시민의 힘이다. 그는 거대 자금이나 정치 로비가 아닌 개인의 편지 한 통에 운동의 뿌리를 뒀다. 철조망에 둘러싸인 촛불. 앰네스티 로고는 이 정신의 압축이다. “어둠을 욕하기보다 촛불 하나 켜는 게 낫다.” 베넨슨이 즐겨 인용한 옛 중국 속담이다. 1961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 런던 성 마틴 성당에 밝혀진 촛불 한 자루가 그 시작이었다.

겸손도 그의 표식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앞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1967년 건강 악화와 조직 내부 갈등으로 사임한 뒤에는 농장에서 조용히 지냈다. 2005년 옥스퍼드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뜰 때, 당시 앰네스티 사무총장 이렌 칸은 “1961년 그의 비전이 인권 운동을 낳았고, 그 유산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도했다(앰네스티 공식 부고, 2005년 2월 26일).

다시, 촛불이 절실한 시대

오늘 베넨슨의 유산은 어느 때보다 시험대에 올랐다. 앰네스티가 2025년 4월 펴낸 ‘세계 인권 현황 보고서’는 위기를 이렇게 정리했다. 강대국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반인도 범죄, 미얀마와 수단의 전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 책임 메커니즘을 흔들었다. 2025년 사형 집행 건수는 4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972년 박정희 유신독재기에 출범했다. 현재 1만5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지부는 시민·표현의 자유 후퇴를 우려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1960년 11월의 지하철에서 베넨슨이 본 한 단짜리 외신 기사. 그를 분노케 했고, 마침내 세상을 움직였다. 한 사람이 켠 촛불이 1000만 명에게 옮겨붙었다. 64년이 걸렸다. SNS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2026년에도 그의 명제는 살아있다. 어둠을 욕할 것인가, 촛불을 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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