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한 줄이 내 삶을 바꾼다…6·3 지방선거 진짜 의미

국회 법률보다 무서운 게 동네 조례

기초지자체 의원이 국민 삶 밀착 조례 만들어

“의원 11% 조례 한건도 발의 안해”…일잘하는 의원 뽑아야

2023년 12월 경기도의회에서 조례 하나가 통과됐다. ‘저소득계층 노인 간병비 지원 조례’. 전국 최초였다. 내용은 단순했다. 극빈층 노인 가구가 짊어지는 사설 간병비를 자치단체 예산으로 지원하자. 저소득 노인 간병비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국회 법률이 아니었다. 대통령령도 아니었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발의하고 통과시킨 조례 한 줄이었다.

그 조례는 최근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경기도 간병 SOS 프로젝트’라는 통합 돌봄 체계로 이어졌다. 병원 입원과 치료 과정에서 간병이 필요한 65세 이상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간병비를 지원한다. 1인당 연간 120만원까지 지원 받는다.

이 조례는 외국인 간병 인력 지원 조례의 후속 제정을 끌어냈다. 돌봄 공백에 내몰렸던 노인 가구들의 삶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지방자치학회는 이 조례에 전국 최고 권위의 우수조례 단체부문 대상을 줬다. 지역 의원이 움직이니 국회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소가 열린다. 많은 유권자가 구의원, 시의원 후보의 이름조차 모른 채 투표소로 향한다. 정당 마크만 보고 찍는다. 그런데 경기도 사례가 보여주듯, 지방의원 한 명의 발의가 수십만 명의 주민 살림을 바꾼다.

방향이 반대일 때도 마찬가지다.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다. 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거시적인 국가 틀을 짠다면, 조례는 주민의 지갑과 직결되는 일상을 실시간으로 재편한다. 맞벌이 가구의 보육 부담을 완화하는 아동 돌봄 지원금, 골목길 치안을 담당하는 CCTV와 LED 가로등, 소상공인의 생계와 직결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종량제 봉투 가격까지. 전부 지방의원이 통과시킨 조례에 근거한다.

국회 법률보다 내 삶에 먼저 닿는 게 동네 조례다.좋은 조례의 힘은 경기도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전남의 한 지자체는 새꼬막 종폐(새끼 조개) 살포를 지원하는 수산 자원 조례를 만들었다. 전년 대비 종폐 살포량이 30% 늘었다. 어가당 평균 소득이 4000만 원 올랐다. 마을 전체로 80억 원의 수산업 소득 증대가 생겼다.

어린이공원 주변 도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자치입법은 주민 90%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인근 주민 절반 이상이 간접흡연 노출 감소를 체감했다. 건축업자의 자금 압박을 덜어준 하수도 원인자부담금 분할 납부 조례, 학교 급식 종사자의 유해물질 노출을 차단한 안전 급식실 조례도 같은 방식으로 태어났다. 지방의원이 만든 작은 조례들이다.

문제는 이런 의원이 드물다는 데 있다. 2023년 9월 경실련이 전국 지방의원 조례 입법 실태를 전수조사해 발표했다. 임기 1년을 맞은 기초·광역의원 3857명 중 11%인 424명이 지난 1년간 조례를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았다. 강원도의회 20.4%, 경상남도의회 20.3%가 여기 해당했다. 기초의회로 내려가면 더 심했다. 경남 거창군의회 54.5%, 강원 강릉시의회 52.6%, 경북 경주시의회 52.4%가 연간 발의 건수 0건이었다. 과반이 아무것도 안 했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서울시의원 의정비는 1인당 7530만 원이다. 2024년 기준으로도 광역의원 평균 6538만 원, 기초의원 평균 4539만 원이다. 일반 직장인 평균 연봉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그 돈을 받으면서 한 건도 안 냈다.

같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격차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부산시의회에서 문영미 의원이 28건을 발의하는 동안, 동료 박중묵 의원은 1건에 그쳤다. 금정구의회 의원 1인당 평균 발의 건수는 1.67건으로, 강서구의회(4.86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일 안 하는 것보다 나쁜 경우도 있다. 2024년 인천에서 전자칠판 비리 사건이 터졌다. 한 시의원은 특정 업체의 전자칠판이 학교에 납품될 수 있도록 개입하고 리베이트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대전에서도 시의원이 전자칠판 입찰 방식 변경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용자 선호도를 반영한 입찰 방식을 문제 삼아 유리한 방향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3년 20개 지방의회를 감사한 결과 총 2318건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의혹이 적발됐다. 지분을 29.5%로 낮추거나 차명 법인을 동원해 법망을 피하는 방식으로 31억 원 규모, 1391건의 부당 수의계약이 체결됐다.

지방의회가 만드는 조례의 막강함을 사법부가 인정한 사례가 있다. 서울 서초구의회는 2013년 기초지자체를 상대로 예산 낭비 사례를 영구 공개하고 성과금 상한을 제약하는 조례를 재의결했다. 서초구청장은 단체장 집행권 침해라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대법원은 2014년 지방의회가 주민 대표 자격으로 예산 집행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견제 권한을 가진다고 판시하며 청구를 전면 기각했다. 조례가 권력을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사법부가 인정했다.

다시, 경기도 노인 간병비 조례로 돌아온다. 그 조례가 없었다면 돌봄 공백에 내몰렸을 노인 가구들이 있다. 누군가 발의했기 때문에 삶이 바뀌었다. 발의하지 않은 424명의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6월 3일, 투표소가 열린다. 공직후보자 정보공개시스템에서 후보 이름을 검색하면 조례 발의 건수와 이해충돌 이력이 나온다. 정당 마크 뒤에 숨은 사람을 확인하는 데 1분이면 충분하다.

그 1분이, 경기도 같은 일이 내 동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느냐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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