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앤트로픽 최강 모델 90분 만에 차단…방아쇠는 한국 SK텔레콤?
오후 5시 21분.
2026년 6월 12일, 미국 동부시간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에게 한 통의 서한이 도착했다. 발신은 미 상무부. 내용은 단순했다. 사흘 전 출시한 최강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페이블5’와 ‘미토스5’를 외국인에게 제공하지 말라는 것.
준수 시한은 90분이었다.
앤트로픽은 전 세계 수억 명 가운데 외국 국적자만 가려내 차단할 시스템이 없었다. 결국 미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에게서 두 모델을 통째로 내렸다. 출시 사흘 만에 세계 최강 모델이 꺼졌다. 한 통의 편지가 한 일이다.
상품이 전략물자가 된 첫날
이 사건은 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상용 AI 모델의 접속 자체를 차단한 첫 사례다.
근거는 2018년 제정된 수출통제개혁법(ECRA)이다. 신흥·기초 기술 확산을 막으려 정부에 긴급 통제권을 준 법이다. 상무부가 이 권한을 실제로 꺼내 든 건 처음이다. 외국 국적자에게 소스코드나 기술을 노출하는 행위를 해외 수출로 간주하는 ‘간주수출(deemed export)’ 조항까지 동원됐다. 미국 땅에서 일하는 앤트로픽의 외국인 직원조차 자사 모델을 못 쓰게 됐다.
과거 수출통제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었다. 반도체 장비, 첨단 칩, 군사 부품. 이번엔 클라우드로 접속하는 AI다. 통제의 대상이 물건에서 ‘접속권’으로 넘어왔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탈옥(jailbreak)’이다. 페이블5의 안전장치를 우회해 위험한 사이버 보안 기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미토스5는 소프트웨어 약점을 인간보다 빨리 찾아내는 모델이다. 방어에 쓰면 보안, 악용하면 무기가 된다.
방아쇠는 아마존이 당겼다. 아마존 연구진이 페이블5에 코드를 넣고 “이 코드를 고쳐달라”고만 입력하자 안전장치가 풀렸다. 아마존은 이를 백악관에 보고했다.
다만 보안 업계 반응은 정반대다. 케이티 무수리스 등 보안 전문가 100여 명은 러트닉 상무장관과 숀 케언크로스 국가사이버국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요지는 이렇다. 추출된 약점은 이미 알려진 고전적 취약점일 뿐, 새로운 위협이 아니다. 코드의 버그를 찾아 고치는 건 전 세계 보안팀이 매일 하는 일이다. 엔비디아·어도비·줌 등 80여 개 기업도 항의 서한에 동참했다. 최고의 방어 도구를 방어자에게서 빼앗는 자해라는 것이다.
아모데이가 벼린 칼날, 그를 겨누다
역설은 따로 있다. 페이블5 서비스 차단 이틀 전인 6월 10일. 아모데이는 직접 글을 올렸다. 정부가 위험한 최신 AI 모델의 출시를 막거나 되돌릴 법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평소 AI 공익성에 대해 강조해온 아모데이는 기업에 무한정한 권한을 주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수시로 드러냈다. AI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 이틀 뒤, 그가 만든 최강 모델을 정조준했다.
백악관 AI·암호화폐 책임자 데이비드 색스는 “마지못해” 통제했다고 표현했다. 아모데이가 ‘제일브레이크’를 위험성을 해소하거나 모델을 내리길 거부했다는 것이다. 안전을 명분으로 정부 통제를 높여 달라는 그의 요청이, 결국 그의 기업에 대한 제재로 돌아왔다.
그 명단에 한국이 있었다
이 사태에는 한국이 깊숙이 박혀 있다.
앤트로픽은 최강 보안 모델 미토스5를 ‘프로젝트 글라스윙(Project Glasswing)’이라는 폐쇄 협의체에 우선 배포했다. 정부와 검증된 동맹 기업 네트워크다. 구글·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이 들었다. 앤트로픽은 111개 기관 명단을 미 정부에 제출해 승인받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앤트로픽은 정부에 알리지 않고 50여 개 기관에 조용히 접근권을 넓혔다. 백악관이 이 추가 명단을 뒤지다 한 곳을 발견했다. 중국 연계 의혹을 받는 한국 통신사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백악관은 그 회사 접근권을 즉각 회수하라 명령했고 앤트로픽은 당일 따랐다. 회사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미토스 우선 접근권을 가졌다고 국내에 거론된 곳은 SK텔레콤·삼성전자·SK하이닉스·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다.
이 가운데 SK텔레콤이 6월 4일 글라스윙 합류와 미토스 조기 접근을 공식 발표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접근권을 받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SK텔레콤은 2023년 앤트로픽에 1억 달러를 투자한 핵심 파트너다. 미국이 문제 삼은 건 보안 등급이 아니라 이 회사의 과거 대중국 투자 이력이었다. SK텔레콤은 “중국과 연계가 없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제재할 명분으로 삼기엔 충분했다.
한국 입장에선 뼈아프다. AI 패권 전쟁의 도화선에 한국 기업 이름이 적혔다.
기업은 정부 간섭을 받아들일까
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은 점점 확대되는 분위기다.
앤트로픽은 정부와 오래 다퉜다. 올해 초 펜타곤이 군사 활용을 요청했을 때 앤트로픽은 거부했다. 대량 감시와 자율 무기에는 클로드를 못 쓰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기관에 클로드 사용 중단을 지시했다. 창업자들을 “좌파 미치광이”라 불렀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앤트로픽을 ‘국가안보 공급망 위협기업’으로 지정했다. 적성국 연계 기업에나 붙이는 딱지다.
그렇게 맞서던 기업이 이번엔 90분 만에 굴복했다. 출시 사흘 된 간판 상품을 스스로 내렸다.
이번엔 정부 요구를 즉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AI가 인프라가 된 순간 선택지가 사라진다. 기업공개(IPO)를 코앞에 둔 앤트로픽엔 더 그렇다. 이 회사 연환산 매출은 2025년 말 90억 달러에서 최근 470억 달러로 6개월 만에 5배 뛰었다. 1조 달러 상장을 눈앞에 뒀다. 정부와 끝까지 싸울 형편이 아니다.
기업은 저항하는 대신 적응한다. 앤트로픽은 신원확인 절차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요구하는 ‘외국인 걸러내기’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규제를 준수하려 사용자 신원 정보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거래다. 빅테크가 정부 간섭을 수용하는 방식이 여기서 드러난다. 맞서기보다 내부로 들인다.
산업은 어떻게 달라지나
이 사건이 산업에 남긴 교훈을 누군가는 이렇게 정리했다.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 리스크.
특정 모델 하나에 워크플로를 묶으면, 그 모델이 꺼지는 순간 사업이 멈춘다. 캐나다 기관들이 그 일을 겪었다. 사전 통보도 유예도 없이 접근이 끊겼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소수 미국 공급사 의존의 위험을 직접 거론했다.
기업들은 즉시 움직였다. ‘멀티 프로바이더 게이트웨이’를 표준으로 삼는 추세다. 1순위 모델이 막히면 10밀리초 안에 대체 모델로 트래픽을 돌리는 구조다. 클로드가 막히면 제미나이로, 제미나이가 막히면 챗gpt로, 챗gpt가 막히면 그록으로, 그게 막히면 중국 LLM 모델로… 핵심 모델을 계속 바꾸는 방식이다. 핵심 업무는 오픈웨이트(open-weights·가중치가 공개돼 자체 서버에 올릴 수 있는) 모델을 사내에 이중으로 깔아둔다. 외부에서 스위치를 내려도 안 멈추게.
시장 재편은 더 빠르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6월 16일 AI 코딩 스타트업 커서(모회사 애니스피어)를 600억 달러에 인수했다. 전액 주식 거래다. 스페이스X는 2월 xAI와 합병해 시가총액 2조6000억 달러 거인이 됐다. 클로드 코딩 도구가 멈춘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Z.ai가 오픈웨이트 모델 GLM-5.2를 내놨다. 100만 토큰 맥락에 코딩 성능까지 갖췄다.
자세히 보면 새로운 흐름이 읽힌다. 스페이스X가 내놓은 건 방대한 GPU다. 커서가 가진 건 코딩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고객 기반이다. 정작 LLM 모델은 거래의 핵심이 아니었다. 소프트웨어·고객에 연산 능력을 붙인 베팅이다.
모델이 점점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이 되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차단이 역설적으로 그걸 증명했다. 페이블5가 꺼지자 며칠 만에 오픈웨이트 모델들이 빈자리를 메웠다. 앞서 본 중국 GLM-5.2가 그런 경우다. 성능이 엇비슷한 모델이 여럿이면, 하나가 막혀도 다른 걸로 바꾸면 된다.
물론 최첨단 프론티어는 예외다. 페이블5 차단이 그토록 아팠던 이유다. 하지만 그 바로 아래 시장에선 모델이 갈수록 부품처럼 호환된다.
GPU는 다르다. 전 세계가 품귀다. 돈이 있어도 줄을 선다. 단숨에 갈아끼울 수 없다. 그래서 해자가 LLM 모델에서 연산 능력으로 옮겨간다. 최고의 모델을 가진 자가 아니라, 그 모델을 멈춤 없이 굴릴 GPU를 가진 자가 이기는 상황이다.
기술 격차의 시대, 동맹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무서운 대목은 따로 있다. 동맹국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는 자국 예외(carve-out)를 요청했다. 미국은 거절했다. 백악관은 주요 7개국(G7) 회원국조차 앤트로픽 최신 모델 접근을 회복시켜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우방이어도 가치사슬 하단에 종속되면, 한 번에 디지털 경쟁력을 잃는 시대가 됐다.
미국은 이 방향으로 법을 만들고 있다. 원격접속안보법(RASA)은 올 1월 하원을 369대 22로 통과했다. 클라우드로 통제 기술에 접속하는 행위까지 수출로 보는 법이다. ‘AI 오버워치법’은 칩 수출 결정에 의회가 30일 검토권을 갖는다. 행정부가 승인해도 의회가 막을 수 있다. 물리적 국경을 넘어, 클라우드와 AI 가중치까지 차단 가능한 법적 요새가 세워지는 중이다.
AI는 더 이상 국경 없는 기술이 아니다. 가장 철저하게 국경을 가르는 안보 자산이 됐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은 지금 그 스위치 바깥에 서 있다. 해외 모델에 깊이 의존하는 구조다. 어느 날 접근이 끊기면 개발 일정도, 서비스도, 행정도 흔들린다.
정부는 이미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17년 만에 부총리급으로 격상했다. 5300억 원을 들여 ‘국가대표 AI’를 뽑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독파모)를 진행 중이다. 네이버클라우드·업스테이지·SK텔레콤·NC AI·LG AI연구원과 모티프테크놀로지스가 경쟁한다. 8월 2차 평가, 연말 3차 평가를 거쳐 최종 두 팀만 남는다. 이들은 엔비디아 최신 GPU B200을 받는다. 결과물은 8월 오픈소스로 공개된다.
민간도 움직인다. 미국 글라스윙을 본뜬 ‘프로젝트 캐노피’가 지난 17일 출범했다. 두나무·LG유플러스·포스코DX 등 27개 기업·기관이 참여했다. 과기정통부는 18일 앤트로픽과 AI 안전·사이버보안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한국이 ‘풀스택 국산화’를 궁극적 지향으로 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조언이다.미국과 중국이 컴퓨팅 자원의 절대다수를 쥔 판에서 한국이 규모로 이기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답은 선택과 집중이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민감 데이터는 해외 모델에 맡기지 않는다. 군사·보안·반도체 지식재산·의료·법률처럼 국경 밖으로 나가선 안 될 정보다. 이런 영역은 글로벌 모델 사용 대상에서 빼고, 국산 모델이나 사내 서버에서 직접 돌리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둘째, 추론을 국내에서 감당할 인프라를 갖춘다. AI는 두 단계로 작동한다. 모델을 만드는 ‘학습’, 그리고 그 모델이 실제로 답을 내놓는 ‘추론(inference)’이다. 사용자가 질문하고 답을 받는 순간이 추론이다. 이 추론을 해외 클라우드가 아니라 국내 GPU·데이터센터에서 돌릴 수 있으면, 데이터가 국경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해외에서 스위치를 내려도 국내에서 돌던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셋째,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 데이터라는 한국의 비교우위를 살린 ‘제조 AI 플랫폼’에 집중한다. 글로벌 모델은 쓰되, 핵심은 국내 통제권 안에 둔다. 이른바 듀얼 트랙이다.
정부가 제도로 해야 할 일
제도적 방파제도 필요하다. 네 가지다.
하나, 국가 소버린 AI 펀드와 연산 크레딧이다. 소버린 AI(Sovereign AI)란 데이터·모델·인프라·인력까지 AI 전 과정의 통제권을 국가가 쥐는 개념이다.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GPU 공급을 방위 기술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 핵심 시스템의 해외 단일모델 상한이다. 국방·금융·전력망 등 멈춰선 안 될 시스템에서 해외 폐쇄형 모델 의존도에 법적 상한을 둔다. 해외 API를 긴급 사용할 땐, 국내 대체 모델을 상시 가동 가능한 상태로 갖추도록 의무화한다.
셋, 국가 위기관리 체계 반영이다. AI 공급 차단을 단순 서비스 장애가 아니라 ‘광역 정전’급 위기로 등재한다. 동맹국 제재 상황에서 24시간 안에 업무를 백업 전환할 수 있는지, 매년 재해복구(DR) 훈련으로 점검한다.
넷, 외교 채널이다. 한미 정상급에서 ‘민간 기술안보 상호보장’ 약정을 맺는다. 사전 통지 없는 기습 차단을 막고, 동맹국 예외 인정 절차를 제도화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모델 성능 다툼이 아니다. AI라는 핵심 인프라의 스위치를 누가 쥐느냐의 문제다.
미국은 그 스위치를 쥐었고, 동맹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다. 한국은 아직 스위치 바깥에 있다. 도화선에 이름은 적혔는데, 차단 버튼엔 손이 닿지 않는다.
스위치를 우리 손에 쥐기 전까지, 한국의 AI는 누군가의 결정 하나에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다. 그 사실을 6월 12일 오후 5시 21분이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