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멈춰 선 두 달, 머스크는 모델을 두 번 갈았다

그록 4.6이 만든 ‘3강 구도’

승부처는 지능 점수에서 단가로 이동

구글은 아직도 최상위 인공지능(AI)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6월에 내겠다던 ‘제미나이 3.5 프로’ 얘기다. 8월 중순인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그록’을 두 번 갈아치웠다. 7월에 4.5, 8월에 4.6이다. 4.5를 4.6으로 끌어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한 달 남짓이었다. 그 한 달 만에 지능 점수가 5점 올랐고, 선두권에 붙었다.

빅테크 AI 전쟁의 시간 단위가 바뀌었다. 연 단위 로드맵은 사라졌다. 한 달이면 순위가 뒤집힌다.

성적표부터 보자

기준을 먼저 짚어야 한다. 독립 평가기관 아티피셜 어낼리시스(AA)가 매기는 ‘인공지능 지능지수(AAII)’다. 코딩, 과학적 추론, 자율 에이전트 작업 등 9개 시험 성적을 하나로 합친 점수다. 업계는 이 숫자를 사실상 공인 성적표로 쓴다.

8월 중순 기준 순위는 이렇다.

모델개발사지능지수100만 토큰당 입력/출력 가격과제당 비용
클로드 오퍼스 5앤트로픽635달러 / 25달러2.34달러
클로드 페이블 5앤트로픽625달러 / 25달러3.14달러
GPT-5.6 솔오픈AI615달러 / 30달러1.23달러
그록 4.6스페이스X612달러 / 6달러0.84달러
키미 K3문샷AI(중국)60자체 제공0.84달러
큐원 3.8 맥스알리바바58초저가
뮤즈 스파크 1.2메타57오픈웨이트0.40달러
제미나이 3.7 플래시구글56초저가0.40달러

한눈에 세 가지가 읽힌다.

첫 줄과 마지막 줄의 점수 차이는 7점이다. 그런데 가격 차이는 5배가 넘는다. 상위 4개 모델은 2점 안에 몰려 있다. 그리고 구글은 이 표에서 9위다.

지능 격차는 좁아지고, 가격 격차는 벌어졌다. 올해 AI 전쟁의 성격을 요약하는 한 줄이다.

그록은 어떻게 35일 만에 따라붙었나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걷어내야 한다. 그록 4.6은 더 큰 모델이 아니다.

스페이스X는 그록 4.5와 동일한 1조5000억개(1.5T) 매개변수 기반을 그대로 썼다. 매개변수는 모델이 학습한 내용을 저장하는 연결점 개수다. 흔히 ‘모델 덩치’로 통한다. 덩치는 그대로 두고, 학습 방식만 바꿨다.

바꾼 지점은 세 곳이다. 추가 학습을 더 오래 돌렸고, 모범 답안 데이터를 다시 만들어 걸러냈고, 에이전트 환경에서 강화학습을 시켰다. 에이전트란 사람이 매번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받아 여러 단계를 스스로 처리하는 AI를 말한다.

효과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점수가 아니라 ‘손이 가는 횟수’다.

AA 측정에 따르면 그록 4.6은 복잡한 업무 하나를 평균 53번의 주고받기로 끝낸다. 같은 일을 클로드 오퍼스 5는 103번 만에 끝낸다. 입력 토큰은 5억개 대 20억개, 4배 차이다.

택시로 치면 목적지는 같은데 우회 거리가 절반이다. 미터기 요금은 4분의 1이다. 토큰당 가격이 60% 싸다는 것보다 이 대목이 더 무섭다. 장시간 이어지는 에이전트 작업은 대화가 쌓일수록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구조 개편이 있다. 머스크는 지난 2월 xAI를 스페이스X에 합병했다. 이어 AI 코딩 플랫폼 커서(Cursor)를 60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로켓 엔지니어링 데이터, 자체 컴퓨팅 인프라, 수백만 개발자의 실시간 코딩 기록이 한 울타리에 들어왔다.

공개된 웹 데이터의 품질은 이미 한계에 닿았다. 남은 승부처는 남이 못 가진 데이터다. 자본을 들여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째로 사들이면 학습 계단 몇 개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다. 그록 4.6이 그 사례다.

다만 경계할 대목이 있다. 이 수치들은 스페이스X가 발표하고 AA가 측정한 값이다. 제3자 독립 재현은 아직 없다. xAI가 직접 공개한 10개 항목 비교표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가져간 모델은 그록이 아니라 앤트로픽의 클로드 페이블 5였다. 코딩 실무 지표인 딥SWE에서는 그록 4.6이 65.9%로, GPT-5.6 솔 맥스(73%)에 밀린다.

그록은 전 종목 1등이 아니다. 가성비 1등이다.

구글, 벤치마크와 체감 사이에서

구글은 13일(현지시간) 경량 모델 ‘제미나이 3.7 플래시’를 내놨다. 지난달 21일 3.6 플래시를 낸 지 3주 만이다.

성능은 나쁘지 않다. 한 번의 지시로 바로 실행되는 코드를 뽑아낸다. 응답 속도는 초당 340토큰. 경쟁 모델 중 초당 200토큰을 넘긴 곳이 없다. API 가격은 경쟁사의 2~3분의 1이다.

그런데 종합 지능지수는 56점, 9위다. 메타의 뮤즈 스파크 1.2(57점), 중국 문샷AI의 키미 K3(60점), 알리바바 큐원 3.8 맥스(58점)에도 밀렸다.

일반 사용자는 “제미나이 잘 쓰는데?”라고 한다. 전문가는 “하위권”이라고 한다. 왜 갈릴까.

평가 항목의 무게중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AAII는 자율 에이전트 작업 34%, 과학적 추론 24%, 고난도 프로그래밍 24%, 일반 지식 18%로 구성된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추론에서 작은 논리 오류가 나면 가차 없이 감점한다.

반면 일상에서 체감하는 만족도는 첫 응답이 얼마나 빨리 뜨는지, 코드가 바로 돌아가는지에 좌우된다. 초당 340토큰은 그 영역의 압도적 1등이다.

전문가는 ‘한계 지능’을 재고, 사용자는 ‘체감 효용’을 잰다. 둘 다 맞다. 다만 기업이 수십억원짜리 시스템을 설계할 때 보는 건 앞쪽이다.

두 달의 공백이 부른 것들

진짜 문제는 최상위 모델의 부재다.

제미나이 3.5 프로는 5월 19일 구글 I/O에서 공개됐다. 6월 일반 출시가 목표였다. 7월로 밀렸고, 8월 중순인 지금도 나오지 않았다. 코딩·안정성 결함과 사전학습 단계의 구조적 문제로 재학습 가능성까지 거론된다.[확인필요]

그 사이 사람이 빠져나갔다. 6월 셋째 주에만 제미나이 핵심 연구자 4명이 오픈AI와 앤트로픽으로 옮겼다. 트랜스포머 공동 개발자 노엄 셰이저(6월 18일, 오픈AI)와 노벨상 수상자 존 점퍼(6월 19일, 앤트로픽)가 포함됐다. 구글은 2024년 캐릭터AI 기술 라이선스에 약 27억달러를 쓰며 셰이저를 다시 데려왔다. 22개월 만에 다시 잃었다.[확인필요]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6월 22일 알파벳 주가는 약 5% 빠졌다. 시가총액 2250억달러가 하루에 사라졌다.[확인필요]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인재 전쟁에서 여전히 앞서고 있다”고 반박했다.

숫자보다 무거운 건 신호다. 기업 고객이 모델을 고르는 기준은 지금 성능만이 아니다. 다음 여섯 번의 출시가 제때 나올지, 최고 연구자들이 아직 그 회사에 남아 있는지를 함께 본다. 조달 일정과 보안 심사는 달력 위에서 돌아간다.

메타의 우회로, 그리고 중국

메타는 정면 승부를 피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을 골랐다.

저커버그는 10일 6500단어짜리 에세이를 내놓으며 ‘뮤즈 글리머’의 가중치를 공개했다. 가중치란 모델이 어떻게 판단할지 결정하는 내부 수치다. 요리로 치면 레시피 전문이다. 이걸 공개하면 누구나 내려받아 고쳐 쓸 수 있다.

글리머는 300억개 매개변수, 아파치 2.0 라이선스다. 양자화하면 20GB 아래로 줄어 소비자용 그래픽카드 한 장이면 노트북에서 돌아간다. 폐쇄형 상위 모델 뮤즈 스파크를 교사 삼아 압축한 모델이다. 스파크 1.2의 가중치도 곧 풀겠다고 했다.

명분은 “모두를 위한 초지능”이다. 저커버그는 “초지능을 중앙에 모으는 대신 널리 나눠 모든 사람이 직접 다룰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썼다. 앤트로픽·오픈AI를 겨냥한 문장으로 읽힌다.

셈법도 있다. 메타 주가는 올해 10%가량 빠졌다. 올해 AI 인프라 지출은 최대 1450억달러다. 라마 4 부진 이후 AI 조직을 갈아엎고 스케일AI에 143억달러를 넣어 알렉산더 왕을 데려온 뒤 내놓는 첫 성과물이다.

같은 자리를 중국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문샷AI 키미 K3는 60점으로 그록·GPT-5.6 솔 바로 아래다. 알리바바 큐원 3.8 맥스 58점, 딥시크 V4 프로 53점. 모두 극단적으로 싸다.

저커버그가 “미국 연구소는 학습 데이터 규제를 더 많이 받는다”며 정책 개선을 요구한 배경이다. 개방형 모델 시장의 표준을 중국이 쥐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을 보고 있나

머스크는 지난 11일 사내 회의에서 “9월이면 AI 매출이 스페이스X의 나머지 사업 부문 매출을 다 합친 것보다 커질 것”이라고 했다. 3~4주 안에 그록 4.7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시장은 그 자신감을 그대로 사지 않는다.

존 벨턴 가벨리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스페이스X와 메타가 막대한 자본을 넣어 가파르게 추격했지만, 오픈AI나 앤트로픽을 완전히 따라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소날리 바삭 iCapital 수석 투자전략가[확인필요]는 다른 각도를 짚었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가장 성능 좋고 가장 비싼 모델일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진짜 질문을 던졌다.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AI가, 그 화려한 복귀를 자금으로 뒷받침해준 본업을 다시 키워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로켓과 광고가 AI를 먹여 살렸다. 이제 AI가 로켓과 광고를 먹여 살릴 차례다. 아직 증명된 적 없는 명제다.

금융·시장 분석가 아누라그 싱은 여기에 한 줄을 보탰다. “가격 파괴 경쟁이 격화되면 AI 업계에 필요한 현실 점검 계기가 될 것이다. 투자가 막대한 만큼 AI 지출은 자본수익률을 입증해야 한다.”

시장은 어디로 재편되나

세 갈래가 보인다.

첫째, 경쟁의 축이 ‘지능’에서 ‘단가’로 넘어간다. 61점짜리 모델을 63점짜리의 40% 가격에 쓸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벤치마크 1~2점 차이는 마케팅 문구로만 남는다. 실제 승부는 1달러당 지능, 1와트당 지능에서 갈린다.

둘째, 기업 시스템 설계가 이미 바뀌고 있다. ‘하이브리드 LLM 라우팅’이다. 업무 난이도에 따라 모델을 갈아 끼우는 방식이다. 병원 응급실의 중증도 분류와 같다. 대량 문서 처리, 챗봇 응답, 단순 코드 보완 등 전체 작업의 90% 이상은 제미나이 3.7 플래시나 딥시크 같은 초저가 모델이 맡는다. 나머지 5~10%의 복잡한 기획·추론에만 오퍼스 5나 GPT-5.6 솔, 그록 4.6을 부른다.[확인필요]

기업 입장에선 AI 운영비가 급감한다. 최상위 모델 개발사 입장에선 매출 성장에 압박이 걸린다. 구글의 초저가 경량 모델이 역설적으로 구글의 무기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론티어 지능은 놓쳤지만 인프라 공급자로는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셋째, 데이터 유통 채널을 노린 M&A가 이어진다. 모델 구조는 평준화됐다. 남은 차별화 요소는 남이 못 가진 데이터와, 그 데이터가 계속 흘러들어오는 통로다. 커서 인수가 첫 사례다. 개발자 도구, 데이터 라벨링 기업, 특화 플랫폼이 다음 표적이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이 판이 한국에 던지는 함의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회다. 최상위 모델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메타가 300억개 매개변수 모델을 노트북에서 돌아가게 풀었고, 중국 기업들은 그 아래를 초저가로 채운다. 국내 기업이 오픈웨이트를 가져다 자사 데이터로 다듬는 편이 자체 대형 모델 개발보다 빠르고 싸다.

다른 하나는 압박이다. 정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으로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4개 팀을 경쟁시키고 있다. 목표는 글로벌 모델 성능의 95% 확보다. 8월 2차 평가를 거쳐 내년 최종 2팀이 남는다.[확인필요]

문제는 기준선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35일마다 5점씩 오르는 시장에서 ‘95%’는 고정된 목표가 아니다. 평가 시점의 95%와 상용화 시점의 95%는 다른 숫자다.

[취재필요: 독파모 참여 4개 팀의 목표 성능 기준 재설정 여부, 과기정통부 입장] [취재필요: 국내 대기업·금융권의 하이브리드 라우팅 도입 실태와 비용 절감 실적]

다음 분기점

AI 왕좌 전쟁의 승부는 이제 지능 점수에서 갈리지 않는다. 같은 일을 몇 번 만에, 얼마에 끝내느냐에서 갈린다.

그 기준으로 보면 현재 선두는 앤트로픽이고, 가장 빠르게 좁히고 있는 쪽은 스페이스X다. 메타와 중국 기업들은 아래에서 바닥을 들어 올린다.

구글만 자리를 잃었다. 되찾을 기회는 한 번 남아 있다. 제미나이 3.5 프로다. 여기서 최상위 추론 성능을 증명하지 못하면, 구글은 프론티어 연구소가 아니라 값싸고 빠른 API 공급자로 위상이 재편된다.

머스크는 3~4주 안에 그록 4.7을 내놓겠다고 했다. 9월이다. 구글이 답할 시간은 그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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