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2.5% 상향, 경상수지 2390억달러 역대 최대 전망
2390억달러. 올해 한국 경상수지 흑자 전망이다. 지난해(1231억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3일 발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2.5%다. 불과 3개월 만에 0.6%포인트 올랐다. 반도체 수출이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경제 지표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성장이 빨라진 만큼 물가도 빨라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도 2.7%로 함께 0.6%p 올랐다.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가속하는 국면이다.
◇ 3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KDI는 지난 2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제시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7%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단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규철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0.6%p 상향 조정 중 반도체 기여도가 0.3%p 이상”이라고 밝혔다. 중동전쟁은 성장률을 0.5%p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반도체 효과가 이를 압도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본예산 외에 추가 편성하는 예산)도 0.2%p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외 기관도 앞다퉈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IB) 8곳의 4월 말 기준 평균은 2.4%로 3월 말보다 0.3%p 올랐다. 일부는 3%대를 전망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1일 2.8%를 제시했다. KDI(2.5%)보다 0.3%p 높다.
◇ 반도체 한 품목이 경상수지 지형을 바꿨다
올해 수출 증가율 전망치는 4.6%다. 3개월 전 전망의 두 배다. 핵심은 반도체다. 정 부장은 “반도체는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진단했다.
경상수지(수출입·서비스·이전소득 등을 종합한 대외 거래 실적) 흑자 전망은 2390억달러다. 원화 환산 시 약 352조원(1달러=1475원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1231억달러)의 1.9배이자 역대 최대 규모다. KDI는 반도체 수출액 급증이 직접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3.3%로 전망됐다. 기업이 생산 능력 확충에 투자를 집중하는 흐름이다. KDI는 상방 가능성도 열어뒀다. 정 부장은 “공급 능력이 빨리 확충될 수 있다면 수출이 더 많이 늘고 성장률이 더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민간소비는 2.2% 증가할 전망이다.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소비는 견조하다. 소득 개선·정부 지원·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자산이 늘면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가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 성장과 물가가 동시에 뛰는 이중 압력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7%다. 2월 전망(2.1%)보다 0.6%p 높다. 원인은 두 갈래다.
공급 측면에서는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KDI는 올해 두바이유를 배럴당 91달러로 가정했다. 지난해(69달러)보다 32%가량 높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 회복이 물가 상방 압력을 더하고 있다.
KDI는 “수요와 공급 양측에서 물가 상방 압력이 동시에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대 인플레이션(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을 포함한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으로, 한국은행을 향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대목은 근원물가(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 흐름)다. 2.5%로 전망됐다. 일시적 충격이 아닌 구조적 상승 압력이 확인되고 있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은 현 수준인 1475원이 유지된다고 가정했다.
◇ 고유가·파업·내년 둔화…하반기 변수 셋
전망치를 위협하는 리스크도 명확하다. 첫째, 중동전쟁이다. KDI는 하반기 중 해소를 기본 가정으로 삼았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고유가가 지속되면 전망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둘째,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 가능성이다. 정 부장은 “실행된다면 성장률에 부정적”이라며 “방향성 자체는 하향”이라고 말했다. 강도와 기간에 따른 정량 추정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셋째, 내년 성장 둔화다. KDI는 내년 성장률을 1.7%로 제시했다. 올해(2.5%)보다 0.8%p 낮다. 반도체 수출 증가세 둔화가 반영됐다. 그럼에도 올해와 내년 모두 잠재성장률(물가 상승 없이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을 웃도는 경기 확장 국면으로 평가됐다.
건설투자는 올해 0.1% 증가에 그치지만, 내년 1.1%로 확대될 전망이다. 취업자 수는 올해와 내년 모두 17만명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KDI 전망의 핵심 변수는 반도체 한 품목이다. 반도체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경상수지를 역대 최대로 밀어 올렸다. 반도체 공급 능력이 얼마나 빠르게 확충되느냐, 중동 정세가 언제 안정되느냐가 하반기 한국 경제의 성적표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