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곡성’ 나홍진 10년 만의 복귀작, 칸 경쟁부문 진출
-외계인 등장 전 62분, 국내외 평단이 꼽은 최강 구간
-제작비 700억·역대 최고액 해외 선판매, 북미 배급은 ‘네온’
-호불호? 각자 결론 내는 영화…그게 ‘호프’의 진짜 재미
10년을 기다린 영화가 극장 문을 열자마자 판을 뒤집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 이야기입니다.
‘추격자’의 그 남자, 외계인을 데려왔다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 세 편으로 한국 장르영화의 문법을 새로 쓴 나홍진 감독이 약 10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무대가 다릅니다.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외딴 항구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청년들의 말을 듣고 마을로 나섰다가, 호랑이보다 훨씬 믿기 어려운 존재와 마주치는 이야기입니다.
미스터리·스릴러·크리처(괴수)물·SF가 한 편 안에서 끊임없이 장르를 갈아타는, 이른바 ‘장르 매시업’이죠.
영화 시작과 동시에 시작하는 1시간, 전세계가 압도당했다
먼저 짚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쫓는 첫 1시간. 호불호를 떠나 대부분 관객은 “압도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세계 유수의 평단도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데일리는 칸 상영본(약 160분) 가운데 첫 1시간을 영화의 가장 강력한 구간으로 꼽았고 , 봉준호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첫 외계인이 탱크로리에 치일 때까지의 62분간, 그 압도적 서스펜스와 박진감”을 콕 집어 물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뒤쫓는 ‘과거형’ 추적이 시가전 같은 ‘현재진행형’으로 전환되는 그 설계에 대부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홀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칸에서 ‘컬트 클래식’ 호평도
‘호프’는 지난 5월 제7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이 6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는데, 이는 올해 경쟁부문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이었다(The Hollywood Reporter)는 평가가 나왔죠.
미국 영화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의 수석 평론가 데이비드 루니는 이 작품을 “질주하는 SF 크리처 무비”라 부르며 “컬트 클래식이 될 요소를 처음부터 갖췄다”고 극찬 (The Hollywood Reporter) 했습니다.
‘컬트 클래식(cult classic)’이란 대중적 흥행과 별개로 열광적 지지층을 형성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는 “영화의 첫 프레임부터 노련한 장르 작가의 손에 맡겨졌다는 느낌을 준다”며, 대낮에 벌어지는 보기 드문 액션 스릴러라는 점,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심장을 때리는 음악, 폭주하는 리듬을 강점으로 꼽았습니다.
700억을 쏟은 판, 그리고 할리우드가 올라탄 배규모도 남다릅니다. 제작비 500억~700억 원대로 알려진 이 영화엔 황정민·조인성·정호연 같은 한국 배우들 곁에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란히 섰습니다.
촬영은 ‘기생충’·’곡성’의 홍경표 감독, 음악은 ‘겟 아웃’의 마이클 에이벨스가 맡았고요. 이런 야심은 시장에서도 증명됐습니다.
칸 경쟁부문 공개 직후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 규모의 해외 선판매 기록을 세웠고, 북미 배급은 ‘기생충’을 오스카로 이끈 배급사 네온(Neon)이 맡아 9월 9일 미국 개봉을 확정했습니다.
호불호? 그게 바로 ‘호프’의 재미다
물론 ‘호프’를 둘러싼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후반부 외계인 서사로 무게가 옮겨가며 물음표로 끝나는 엔딩에 당황하는 관객도 적지 않죠.
CGV에그지수(관람객 평가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지표)는 82% 선, 별점 분포는 9~10점과 1~2점이 동시에 높은 ‘양극화’ 그래프를 그립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건 ‘호프’의 흠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나홍진 감독 스스로 “서사라는 살을 내주고 디테일이라는 뼈를 얻으려 했다”고 말했으니까요.
기승전결의 안전한 답 대신, 관객 각자가 스스로 결론을 짓게 만드는 영화. 관객님이 느낀 ‘다양한 궁금증’과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야말로, 나 감독이 정확히 노린 지점이었던 겁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200만 관객을 올해 최고 속도로 끌어모으며(개봉 5일 만) 흥행 질주 중인 이 영화는, 편하게 소비하는 오락물이 이면서, 극장을 나선 뒤에도 계속 곱씹게 되는 ‘사건’에 가깝습니다.
압도적인 첫 1시간을 이미 경험하셨다면, 그 뒤에 남은 물음표들을 관객 각자의 몫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희망처럼 2편과 3편이 제작돼 온갖 떡밥을 회수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단은 아무 생각없이 즐기거나, 진지하게 해석하고 비판하거나, 다양하게 즐기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