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사람]”파괴될 뿐 패배 않는다”던 그는 왜 스스로 무너졌나

퓰리처·노벨상 안긴 하드보일드 문체…20세기 미국 문학의 상징

강인한 남성상 뒤에 감춘 상처…사망 65주기에 돌아본 헤밍웨이

1961년 7월 2일 이른 아침,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의 자택.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정신병원 문을 나선 지 엿새 만이었다. 예순두 번째 생일을 채 3주도 남기지 않은 때였다. 오늘로 꼭 65년 전 일이다.

아이러니였다. 그는 『노인과 바다』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 무너졌다. 20세기 미국 문학의 상징이자 강인한 남성의 대명사로 불린 작가의 마지막은 그렇게 조용하고 참혹했다.

■ 미국이 자랑하는 작가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1899~1961)는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 사이의 장남이었다. 사회 첫발은 기자였다. 캔자스시티 스타에서 익힌 간결한 문장은 평생의 무기가 됐다.

그는 소설가이자 종군기자였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를 남겼다.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마크 트웨인과 함께 미국이 자랑하는 작가로 꼽힌다.

■ 전쟁이 낳은 작가

헤밍웨이의 문학은 전쟁에서 태어났다. 1918년 그는 적십자 구급차 운전병으로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에 섰다. 그해 7월 8일 박격포탄 파편에 두 다리를 크게 다쳤다. 열아홉 살의 부상 경험은 훗날 『무기여 잘 있거라』(1929)의 밑그림이 됐다.

1920년대 파리 시절도 자양분이었다. 그는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와 어울렸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 젊은 예술가 무리를 스타인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불렀다. 방향을 잃은 전후 세대라는 뜻이다. 헤밍웨이는 이 시절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에 담았다.

전장은 계속 그의 소재가 됐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뛰어들어 프랑코의 반군에 맞선 공화파를 지지했고, 그 기록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로 이어졌다. 2차 대전 때는 노르망디 상륙과 파리 해방 현장을 취재했다.

정점은 말년에 왔다. 1952년 발표한 『노인과 바다』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1954년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그의 간결한 문장은 이후 미국 작가들이 가장 많이 따라 한 문체가 됐다.

■ ‘빙산 이론’, 헤밍웨이 문체의 비밀

헤밍웨이 문체는 ‘하드보일드(hard-boiled)’로 불린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 감정을 절제한 건조한 서술이 특징이다. 기자로 단련된 문장 감각이 바탕이었다.

그는 이를 ‘빙산 이론’으로 설명했다. 물 위에 드러난 8분의 1이 전부가 아니라, 물밑에 잠긴 8분의 7이 글에 힘을 준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이 말하는 방식이다.

쉬워 보이는 문장은 사실 고통의 산물이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대목을 39번 고쳐 썼다고 밝혔다. 동료 윌리엄 포크너가 “그의 책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꼬집자, 헤밍웨이는 “어려운 단어를 써야 감동이 나오는 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단순함이 그의 신념이었다.

‘파파(Papa)’라는 별명처럼 그는 강인한 남성상을 앞세웠다. 사냥, 복싱, 낚시를 즐겼고, 전장을 누볐다. 하지만 이 마초 이미지가 그의 전부였는지는 논쟁적이다. 사후 한 지인은 “실제로는 겁 많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과장된 남성성으로 표출됐다는 해석도 있다.

■ 신화와 그늘

헤밍웨이만큼 신화가 많이 따라붙은 작가도 드물다. 쿠바 시절 모히토를 즐겼다는 이야기,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이라는 여섯 단어 소설이 대표적이다. 둘 다 그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 명성이 만든 전설에 가깝다.

반면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다. 말년에 그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호소했다. 편집증으로 치부됐지만, 훗날 FBI가 실제로 그를 감시했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가장 깊은 그늘은 죽음이었다. 부친을 비롯해 가족 여러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손녀인 모델 마고 헤밍웨이도 1996년 같은 길을 갔다. 정신질환에 취약한 가족력, 거듭된 부상과 알코올, 노년의 창작 부진이 겹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헤밍웨이는 강한 척했지만 약했고, 삶을 사랑했지만 스스로 끝냈다. 그 모순이 그의 문학을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그가 남긴 유산은 문체였다. 짧고 정확한 문장으로도 깊은 울림을 낼 수 있다는 것. 65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작가가 그를 따라 쓰고, 그를 넘어서려 한다. 태양은 오늘도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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