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령을 통째로 날린 ‘실지왕’…그 무능이 만든 대헌장 800년
811년 전 오늘, 잉글랜드 한 초원에서 왕이 무릎을 꿇었다. 1215년 6월 15일 러니미드. 40명의 남작이 왕을 에워싸고 요구 조항에 인장을 찍으라 압박했다. 폐위와 처형의 공포 속에서, 존 왕은 굴욕을 견디며 밀랍 위에 도장을 눌렀다. 그렇게 탄생한 문서가 마그나카르타, 곧 대헌장이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존은 영국사 최악의 군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인류 법치(法治)의 출발점을 남겼다. 무능했기 때문에 남길 수 있었던 유산이다.
◇ ‘땅을 잃은 왕’, 존은 누구인가
존(재위 1199~1216)은 헨리 2세의 막내아들이자, 십자군의 영웅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동생이다. 별명은 ‘래클랜드(Lackland)’, 우리말로 실지왕(失地王)이다. 본래 어려서 봉토를 받지 못해 붙은 이름이지만, 훗날 프랑스 영토를 대거 잃으면서 ‘땅을 잃은 왕’이라는 조롱으로 굳어졌다. 신장은 165㎝. 형 리처드보다 31㎝나 작았다. 값비싼 옷과 보석을 탐했고, 상당한 미적 감각의 소유자였다고 전해진다.
◇ 숫자가 말하는 존의 실정과 업적
존의 치세는 ‘상실의 기록’이다. 1214년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와 맞붙은 부빈 전투에서 패하며 노르망디 등 프랑스령을 사실상 통째로 내줬다. 당시 프랑스령은 아키텐 한 곳의 세수가 잉글랜드 전체와 맞먹을 만큼 알짜였다. 그 노른자위를 잃은 것이다.
다만 무능 일변도는 아니었다. 즉위 초 내치와 행정에서는 능력을 보였고, 해군 육성·리버풀 건설·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배 확립 등에는 업적이 남았다고 평가된다. 군사 지휘력도 의외로 평균 이상이었다. 왕자 시절 포위된 어머니를 구하러 이틀 만에 130㎞를 주파해 적 지휘부를 제압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큰 그림’이었다. 일선 전투는 그럭저럭 치렀으나, 전략적 판단은 번번이 어긋났다. 양면 공격 같은 화려한 작전을 짜다 실행에서 무너졌다. 단순하고 현실적인 작전을 택한 형 리처드, 필리프 2세와 갈린 지점이다.
◇ 적을 만드는 데 천재였던 리더십
존의 진짜 약점은 전장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치와 외교에서 그는 최악이었다. 전쟁 초기만 해도 프랑스령 영주들은 존을 따랐다. 그러나 자신을 돕던 봉신을 무시하고, 포로를 방치하면서 우군을 차례로 적으로 돌렸다. 영토를 잃은 건 군대를 못 굴려서가 아니다. 봉신들이 등을 돌려 필리프에게 붙었기 때문이다. 인격적 결함이 곧 패망의 원인이었다.
형 리처드와의 대비가 선명하다. 리처드는 화나면 가차 없었으나 쓸데없는 적은 만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병사를 죽어가며 용서한 일화가 남아 있다. 반면 존에게는 약자와 패자를 관용하는 정신이 없었다.
마그나카르타조차 그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헌장 날인 한 달여 만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부탁해 문서를 무효라 선언하게 했다. 이 배신이 제1차 남작 전쟁(1215~1217)을 불렀고, 존은 이듬해 전쟁 중 설사병으로 사망했다.
◇ 최악의 왕이 남긴 최고의 유산
그가 남긴 대헌장은 교회의 자유, 봉건 부담의 제한, 재판과 법률 등 63개조로 짜였다. 핵심은 한 문장이다. 왕도 법 아래 있다. 왕 스스로 법에 종속됨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KhanKhan
물론 과대평가는 경계해야 한다. 문서 자체에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후대에 왕과 대립이 생길 때마다 확대 해석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그 정신은 권리청원(1628)과 권리장전(1689)으로 이어져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됐다. WikisourceKhan
존을 향한 평가는 박하다. 2005년 BBC 조사에서 ‘최악의 영국인’ 10위 안에 든 유일한 왕이었다. 2015년 800주년 기념식에서 필립 해먼드 당시 외무장관은 “존은 최악의 군주를, 엘리자베스 2세는 최고의 군주를 대표한다”고 했다. 이미지가 어찌나 나빴는지, 이후 잉글랜드 군주 중 ‘존’이라는 이름을 쓴 이가 없다. ‘존 1세’도, ‘존 2세’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한 가지 아이러니가 남는다. 잉글랜드·영국의 왕통은 영웅 리처드가 아니라, 바로 이 무능한 존의 후손으로 이어졌다. 무능이 역사를 닫지 않고, 오히려 새 질서의 문을 열었다.
811년 전 러니미드의 그 도장 한 번. 가장 약한 왕의 가장 약한 순간이, 왕보다 법이 위에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역사가 종종 영웅이 아닌 실패자의 손에서 방향을 트는 이유다.
![[오늘, 이 사람] 존 왕](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1/Jan_tom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