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기습부터 6월 19일 서명까지, 호르무즈는 다시 열린다
106일. 중동의 전쟁이 그렇게 끝났다.
2026년 6월 1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언했다. “이란과의 합의가 마무리됐다.”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린다.
주목할 건 시작과 끝이 똑같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핵 협상 테이블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끝났다. 106일간 무슨 일이 있었나. 시계를 되돌려보자.
[전사] 왜 또 전쟁이었나
불씨는 1년 전부터 있었다.
2025년 6월, ’12일 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때렸고, 미국이 가세했다. 6월 24일 휴전으로 봉합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025년 9월, 유엔이 대이란 제재를 되살렸다. 이른바 ‘스냅백'(snapback)이다. 과거 핵합의를 어기면 해제했던 제재를 자동 복원하는 장치다. 이란 통화 리알화가 무너졌다. 물가가 뛰었다.
2026년 1월,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터졌다. 1979년 혁명 이래 최대 규모였다. 당국은 유혈 진압했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경고했다.
2026년 2월 24일, 트럼프가 국정연설에서 주장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미국을 타격할 미사일을 개발 중이라고도 했다. 같은 달, 오만에서 미·이란 간접협상이 열렸다. 합의는 없었다.
협상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미군은 중동에 병력을 쌓고 있었다.
[개전] 2월 28일, 협상 테이블 위의 기습
2026년 2월 28일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동시 타격했다. 핵 협상이 한창이던 와중이었다. 이스라엘은 작전명을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로 붙였다. 공군 사상 최대 출격이었다.
첫 타격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군 수뇌부 다수도 함께 제거됐다. 사이버 공격이 겹쳐 이란 인터넷이 60시간 넘게 마비됐다.
이란은 몇 시간 만에 보복했다. 작전명 ‘진실한 약속 IV’. 미사일과 드론 수백 발을 쏟아냈다. 표적은 이스라엘만이 아니었다.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의 미군 기지가 맞았다. 걸프 전체가 전장이 됐다.
그리고 이란은 카드를 꺼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였다.
[확전] 3월, 유가가 폭발했다
전쟁은 곧바로 경제전쟁이 됐다.
3월 4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닫혔다.” 하루 2,000만 배럴,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27%가 지나는 길목이다. 통항이 사실상 멈췄다.
국제유가가 튀어 올랐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다. 개전 직전(2월 27일) 72달러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유시장 역사상 최대 공급 차질”이라고 했다. 한 원유 전문가는 봉쇄가 길어지면 150~200달러까지 간다고 경고했다.
전선은 넓어졌다. 3월 8일,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가 새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3월 18일, 이스라엘이 이란 사우스파스 가스전을 때렸다. 이란은 카타르 LNG 시설로 보복했다. 3월 21일, 미국이 벙커버스터로 나탄즈 핵시설을 타격했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승리”를 선언했다. 동시에 이란에 경고했다. 호르무즈를 열지 않으면 “문명을 파괴하겠다”고 했다.
[변곡점] 4월, 휴전했지만 봉쇄는 풀리지 않았다
전환점은 4월에 왔다.
중재자는 파키스탄이었다. 4월 5일, 45일짜리 휴전안을 냈다. 이란은 거부했다. 대신 10개항 평화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우라늄 농축 권리 유지였다.
4월 8일, 2주 휴전이 성사됐다. 유가가 즉시 빠졌다. 브렌트유가 14% 급락해 94달러대로 내렸다. 시장은 끝을 기대했다.
하지만 휴전은 종전이 아니었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다시 열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유로 들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후속 회담은 결렬됐다.
4월 13일, 트럼프가 강수를 뒀다. 이란에 대한 해상봉쇄(naval blockade)였다. 미 해군이 이란 항구를 틀어막았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다시 잠갔다. ‘이중봉쇄’였다. 미국이 이란을 막고, 이란이 걸프를 막는 구조다.
4월 21일, 트럼프는 휴전을 무기한 연장했다. 그러나 4월 말, 다시 말을 바꿨다. “전쟁을 재개해야 할 수도 있다.” 교착은 두 달간 이어졌다.
[종전] 6월 14일, 트럼프의 생일에 발표된 합의
돌파구는 6월에 열렸다.
5월 말, 미·이란이 60일짜리 양해각서(MOU·정식 합의 전 단계의 합의문)에 근접했다. 한 차례 무산됐다. 6월 8일에는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외곽 헤즈볼라를 공습했다. 협상이 깨질 뻔했다. 트럼프는 즉각 “모든 당사자는 자제하라”고 했다.
6월 12일, 미·이란이 “합의 임박”을 알렸다. 그리고 6월 14일,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이란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
이란도 확인했다.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차관은 국영TV에서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영구적 종전이 선언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란은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정식 서명식은 6월 19일 스위스에서 열린다. 개전 106일, 4월 휴전으로부터 두 달여 만이다.
합의 직후 트럼프가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행료 없이 전면 개방한다. 미 해군의 봉쇄도 즉시 해제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세계의 선박들이여, 엔진을 켜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
[현재] 가장 큰 피해자는 비(非)교전국 한국이었다
전쟁의 청구서는 컸다.
이란은 인명 피해만 3,500명 안팎으로 집계됐다. 미군도 15명이 전사했다. 이란이 추산한 자국 경제 피해는 최소 3,000억 달러다. 미국의 전비도 한 달 만에 수백억 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가장 깊게 베인 건 전쟁에 끼지도 않은 나라였다. 한국이다.
한국은 원유의 70%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지난다. 봉쇄가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개전 한 달 시점에 이렇게 평가했다. “어떤 비교전국도 한국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수치가 말해준다. 코스피는 43년 역사상 최악의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원화 가치는 17년 만의 최저로 떨어졌다. 한국 선박 26척이 걸프에 발이 묶였다. 전략 비축유는 26일분만 남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성장률 전망을 0.4%포인트 깎았다.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이었다. 정부는 100조원 규모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래서 6월 14일 종전 소식에 한국 경제가 가장 크게 안도했다.
[전망]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합의문을 뜯어보면 종전은 절반이다.
첫째, 핵 문제는 미정이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사지도 않기로 했다. 고농축우라늄(HEU·무기급에 가까운 농축 우라늄)도 자국 내에서 희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농축 활동을 영구 중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20년 중단”을 원했지만 “15년”으로 타협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핵심 쟁점은 앞으로 60일간 협상이다. 이 안에 못 풀면 일정은 “연장”된다.
둘째, 호르무즈 개방도 한시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통행료 면제가 “60일짜리”라고 짚었다. 영구 보장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지적도 있다. 전쟁 전 이란은 애초에 통행료를 받지 않았다. NYT는 “트럼프가 사실상 전쟁 전 상태로의 복귀를 자축하는 셈”이라고 했다.
오히려 이란이 새 카드를 쥐었다. AP통신은 “이란이 해협 해운에 영향을 미칠 협상 수단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봉쇄를 풀어주는 대가로 동결자산 약 240억 달러가 단계적으로 풀린다. 호르무즈는 이제 이란의 지렛대가 됐다.
셋째, 이스라엘이 변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합의 당사자가 아니다. 막판 베이루트 공습이 보여줬듯, 언제든 판을 흔들 수 있다. 트럼프조차 “전쟁 재개”를 입에 올린 바 있다.
남은 질문은 한국 경제에 직결된다. 유가와 환율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봉쇄가 풀려도 선박이 실제로 움직여야 가격이 내린다. 그 신뢰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106일의 전쟁이 남긴 교훈은 하나다. 협상으로 시작된 전쟁은 협상으로 끝났지만, 그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60일이 진짜 전쟁의 결말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