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드론이 흔든 질서, 유가·환율·공급망까지
‘에너지 각자도생’ 시대가 열렸다
호르무즈 상공. 미 육군 주력 공격헬기 ‘AH-64 아파치’가 추락했다. 떨어뜨린 건 미사일도, 전투기도 아니었다. 이란의 자폭 드론 ‘샤헤드’. 태평양전쟁기 일본 자폭 특공대 이름을 따 ‘가미카제 드론’으로 불리는 무인기다. 한 대당 수만 달러짜리 무기가, 수백억 원짜리 헬기를 떨어뜨렸다.
물에 빠진 조종사 2명을 건진 것도 사람이 아니었다. 미 해군 수상드론 ‘코세어’. 무인 선박이 승무원을 태워 안전 해역으로 옮겼다. 격추도 구조도 무인기가 했다. 비대칭 전술(asymmetric warfare·약자가 저비용 비정규 수단으로 강자의 고가 전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의 한 장면이 그렇게 완성됐다.
그리고 보복이 시작됐다. 미군은 추락을 격추로 규정하고 호르무즈 연안을 타격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즉각 미사일과 드론으로 맞받았다. 4월 이후 위태롭게 유지되던 휴전이 사실상 깨졌다. 미·이란 전쟁이 발발 100일을 막 넘긴 시점이었다.
이 한 장면에 전쟁의 본질이 담겨 있다. 값싼 무인 기술이 재래식 강군을, 좁은 해협 하나가 세계 경제를 흔드는 전쟁. 경과를 되짚고, 앞으로의 갈림길을 짚는다.
시작: 협상 테이블 위로 떨어진 폭탄
전쟁은 2026년 2월 28일 새벽 시작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 본토를 기습 타격했다. 표적은 핵·군사 시설만이 아니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고위 인사들이 함께 제거됐다. 핵 협상 핵심 인물이던 알리 라리자니도 이 공습으로 숨졌다.
명분은 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47년간 ‘미국에 죽음을’ 외친 정권이 핵을 갖게 둘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명분은 곧 흔들렸다. 이 전쟁은 이란 핵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중동 전역으로 뻗은 군사적 영향력을 둘러싼 수년간의 긴장이 쌓인 끝에 터졌다. 공습 이틀 뒤인 3월 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란에 핵무기 제조 프로그램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명분과 정보가 어긋난 셈이다.
그래서 다른 동기가 거론된다. 이란 내부의 정권 교체, 그리고 두 지도자의 국내 정치다. 부패 재판에 직면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엡스타인 스캔들에 시달린 트럼프 대통령. 한 미 당국자는 “비비(네타냐후의 별명)는 이스라엘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계속해야 하고, 트럼프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요약했다. 개전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만 어느 쪽 해석이든, 협상이 거의 타결 직전에 깨졌다는 점만은 여러 중재국이 공통으로 증언한다.
경과: 100일을 가른 다섯 국면
① 기습 타격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이 전쟁은 중동 전역을 휘말리게 했다. 미국은 지상군 없이 공습으로 일관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뿐 아니라 바레인·UAE·쿠웨이트 등 미군 주둔 걸프 국가로 보복을 확대했다. 걸프전·이라크전 때와 달리, 미국·이스라엘 외 동맹국은 요격 등 소극적 대응에 머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일본을 포함한 동맹에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했으나, 응한 나라는 아직 없다.
② 호르무즈 봉쇄 (3월 4일~)
이란의 반격 카드는 ‘병목’이었다. 3월 4일부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로 선언하고, 통항하려는 선박을 위협·공격했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33km의 좁은 통로다. 대체 항로가 없는 ‘초크포인트(chokepoint·세계 물류의 숨통을 쥔 전략 요충)’다. 전 세계 해상 원유·석유제품 무역의 약 27%가 이곳을 지난다.
봉쇄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전쟁 전 월 3,000척이 오가던 해협의 통항량은 평시의 약 5% 수준으로 급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를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로 규정했다.
③ 미국의 해협 재개방 작전·해상봉쇄 (3월 19일~4월 13일)
미국은 힘으로 해협을 열려 했다. 3월 19일, 미국은 호르무즈를 다시 국제 항행에 개방하겠다며 이란 함정과 드론을 표적으로 한 공중 작전을 개시했다.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은 거의 끝났다”며 이란군이 파괴됐고 해협이 다시 열렸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결렬되자 4월 13일 미국은 이란 항구를 봉쇄하는 역(逆)봉쇄에 들어갔다. 이란이 해협을 막자, 미국이 이란의 출구를 막는 ‘봉쇄 대 봉쇄’ 구도가 만들어졌다.
④ 휴전, 그리고 붕괴 (4월 7~8일)
전기는 외교에서 왔다. 약 6주간의 교전 끝에, 4월 8일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가 미·이란의 ‘조건부 2주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중재는 파키스탄이 맡았고, 호르무즈 항행, 핵·미사일 프로그램, 재건과 제재, 장기 평화협정이 의제에 올랐다.
그러나 휴전은 시작과 동시에 흔들렸다. 발표 몇 시간 뒤 이스라엘군(IDF)이 레바논 전역을 공습해 수백 명이 숨지고 1,000명 넘게 다쳤다. 휴전에 레바논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당사국 해석이 갈렸다. 이란 외무장관은 합의가 “한 뼘 차이”라면서도 미국 측의 “최대주의적 요구”를 비판했다. 4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무기한 연장했지만, 휴전은 양측 모두에 의해 거듭 위반됐다.
⑤ 충돌 재개 (6월)
그리고 6월, 휴전의 외피마저 벗겨졌다. 6월 7일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으로 긴장이 재점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24시간 동안 전면전을 막으려 동분서주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조심하지 않으면 곧 혼자 싸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와중에 아파치 헬기가 격추됐고, 미국의 보복과 이란의 재보복이 이어졌다. 100일을 버틴 휴전 구도는 다시 무력 충돌로 되돌아갔다.
경제 충격: 1970년대 오일쇼크의 그림자
전쟁의 청구서는 전선 밖에서 날아들었다. 핵심은 유가다.
3월 4일 호르무즈 봉쇄 직후 브렌트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고,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전 수출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천재지변·전쟁 등 통제 불가능한 사유로 계약 이행이 면제되는 조항)을 선언했다. 3월 12일까지 쿠웨이트·이라크·사우디·UAE의 원유 생산은 하루 1,000만 배럴 넘게 줄었다.
물가가 따라 올랐다. 호르무즈 봉쇄가 한 분기에 그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2026년 미국 헤드라인 물가는 0.6%포인트, 근원물가는 0.2%포인트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고유가가 연말까지 지속되면 2026년 세계 GDP 성장률이 0.3%포인트 깎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급 차질·고물가·저성장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의 동시 진행)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국이 받은 충격은 더 직접적이다. 2월 말 1,440원이던 달러/원 환율은 3월 들어 1,510원대까지 올랐고, 같은 기간 WTI 유가와의 상관계수는 0.9를 넘었다.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국가는 전체 원유의 70% 이상을 호르무즈를 통해 들여오는 탓에, 원화·엔화·대만달러가 여타 통화보다 더 크게 약세를 보였다.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에서 103달러까지 40% 이상 급등했고, 제조업 생산 원가를 직접 압박하고 있다. 카타르·UAE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LNG 물량 확보 경쟁에도 노출됐다.
여진은 에너지 전략 자체를 바꾸고 있다. 세계는 ‘나 먼저(me-first)’, 곧 에너지 각자도생으로 돌아섰다. 베트남에서는 연료 부족과 사재기가 나타났다. 남미 산유국 가이아나는 첫 정유시설 건설을 검토하고, 인도네시아는 태양광을 국가 우선순위로 끌어올렸다. 벨기에는 원전 국유화를, ‘핵 없는 나라’를 표방하던 대만은 원전 회귀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값싼 무역으로 에너지를 조달하던 시대가, 위기 시 자국에서 조달 가능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향후 전망: 세 갈래의 길
전쟁은 어디로 갈까. 국내외 기관은 대체로 세 갈래 시나리오로 정리한다.
시나리오 ①—조기 종전·휴전. 외교가 다시 작동해 해협이 단계적으로 열리는 경우다. 골드만삭스는 해협 저물동량이 6주에 그치면 브렌트유가 3월 105달러, 4월 115달러를 거쳐 4분기 80달러로 내려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KDI 분석은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배럴당 63달러)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조기 종전 시에도 2027년 4분기 90달러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평시 복귀’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나리오 ②—봉쇄 장기화. 휴전이 명목상 유지되나 해협 통제가 길어지는 교착 국면이다. 현재 국면에 가장 가깝다. 이 경우 유가는 2027년 4분기 117달러 수준으로 예측된다. 골드만삭스도 차질이 10주로 길어지면 브렌트유가 14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4분기 100달러로 내려올 것으로 봤다.
시나리오 ③—에너지 시설 타격·확전. 최악의 경로다. 에너지 시설이 직접 타격받는 확전 시 유가는 2027년 4분기 174달러까지 전망된다. 여기에 새 불씨가 더해졌다.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은 호르무즈에 이어 홍해·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저항의 안보 벨트’로 묶겠다고 시사했다.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를 막으면 전 세계 석유·가스 해상 운송량의 3분의 1이 영향권에 든다.
외교 전망은 어둡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은 결렬됐고, 추가 회담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란 협상 대표 갈리바프 의회의장은 “우리는 미국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며 종전이 목표일 뿐 관계 정상화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미·이스라엘의 전략적 이해가 갈라지고 있다. 전쟁을 끝내야 사는 트럼프와, 전쟁을 계속해야 사는 네타냐후. 이 어긋남이 풀리지 않는 한, 휴전은 깨지고 다시 봉합되는 일을 반복할 공산이 크다. 유엔 안보리에서는 중국·러시아가 호르무즈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고유가는 러시아와 (일시적으로) 이란에 이득이 되고 있다.
결론: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값싼 드론이 주력 헬기를 떨어뜨린 그 장면은 은유다. 적은 비용으로 거대한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시대. 좁은 해협 하나가 세계 물가와 환율을 좌우하는 시대.
전쟁이 멈춰도 세계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유가는 새 균형점을 찾고 있고, 각국은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무역으로 싸게 조달하던 효율의 시대는 저물고, 안보를 위해 비싸게 비축하는 자립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은 그 한복판에 있다. 원유의 호르무즈 의존, 약한 통화, 높은 제조업 에너지 집약도. 셋이 동시에 노출됐다.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힘은 없지만, 충격을 견딜 준비는 할 수 있다. 수입선 다변화, 비축 확대, 에너지 자립도 제고. 이번 100일이 던진 숙제다.
전쟁은 100일을 넘겼다. 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세계 에너지 지형은 이미 한 시대를 건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