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둘로 쪼개졌다…CPI·스페이스X·연준이 가를 6월 증시
캐시우드가 서울에 왔다.
‘돈나무 누나’로 불리는 월가의 스타 투자자다. 4년 만의 방한이다. 10일 한 금융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한국 증시를 진단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끄는 시장의 미래를 이야기할 참이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도 다녀갔다. 월가의 거물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는다.
그런데 정작 한국 증시는 떨고 있다.
‘한국형 공포지수’가 사상 최고를 찍었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 옵션 가격에 담긴 투자자의 불안을 수치로 잰 지표다. 높을수록 시장이 떤다. 9일 91.23. 2009년 지수를 만든 뒤 최고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
그런데 같은 날 코스피는 8.18% 올랐다. 역대 최대 상승폭이다.
공포가 사상 최고인데, 주가는 사상 최대로 뛰었다.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순이 지금 시장의 전부다. 아무도 다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롤러코스터, 사흘의 기록
되감아보자.
6월 5일(현지시간) 뉴욕. 나스닥이 4.18% 빠졌다. 1년 만의 최악이었다. S&P500도 2.6% 내렸다. 하루 만에 1조8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이틀 뒤 한국. 8일 코스피는 8.29% 폭락했다. 7484로 주저앉았다. 9일엔 정반대였다. 8.18% 폭등. 장 초반 매수가 몰려 사이드카까지 걸렸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급변하면 프로그램 매매를 잠시 멈추는 장치다. 과열을 식히는 브레이크다.
10일 아침 코스피는 다시 8000선을 내줬다. 7939. 원·달러 환율은 1525원까지 뛰었다 1514원으로 내려왔다.
사흘 사이 폭락·폭등·재하락. 시장은 방향을 잃었다.
왜 떨어지나 —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다
방아쇠는 엉뚱한 곳에서 당겨졌다. 미국의 5월 고용이었다.
신규 일자리 17만2000개.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보통은 호재다. 그런데 주가는 떨어졌다.
이유는 이렇다. 고용이 강하면 경기가 뜨겁다는 뜻이다. 뜨거운 경기는 물가를 밀어올린다. 그러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올릴 수도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집계로 12월 금리 인상 확률이 68%까지 뛰었다.
금리가 오르면 왜 기술주가 더 아플까.
기술주의 값은 ‘미래의 돈’으로 매긴다. 지금이 아니라 몇 년 뒤 벌어들일 돈을 끌어와 계산한다. 그 미래의 돈을 오늘 가치로 환산할 때 금리를 쓴다. 금리가 높아지면 미래의 돈이 작아 보인다. 깎아내는 비율, 즉 할인율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 목표가가 먼저 깎인다.
실제로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4.54%로 올랐다. 반도체株가 먼저 무너졌다. 메모리 반도체를 담은 한 ETF는 하루 15% 빠졌다. 비트코인도 6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위험자산에서 돈이 빠지는 신호다.
월가는 둘로 갈렸다
전망은 정반대로 쪼개졌다.
먼저 약세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팔 때”라고 했다. 약세장 전조 지표의 70%가 켜졌다는 것이다. S&P500은 20개 밸류에이션 지표 중 17개에서 고평가다. 밸류에이션은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뜻한다. 그중 8개는 2000년 닷컴버블 때보다 비싸다. BofA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메타의 AI 설비투자가 올해 영업현금흐름의 100%에 이른다는 점도 짚었다. 2023년 40%에서 두 배 넘게 불었다.
씨티의 ‘베어마켓 체크리스트’는 18개 항목 중 11.5개가 점등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다. JP모건은 단기 전망을 ‘강세’에서 ‘전술적 신중’으로 낮췄다. BNP파리바는 연준이 12월부터 세 차례 금리를 올린다고 봤다. 1999년 긴축 국면의 재현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강세론도 만만치 않다.
씨티는 같은 주에 S&P500 연말 목표를 7700에서 8100으로 올렸다. 약세 신호를 경고한 바로 그 은행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하락을 “건강한 조정”이라 불렀다. 강세장이 4년째 이어진다고 본다. 골드만삭스도 연말 7600을 제시했다. AI 투자가 S&P500 이익 증가의 40%를 떠받친다는 계산이다. 다만 골드만은 강한 고용 탓에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밀린다고 봤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정반대 결론을 낸다. 씨티의 표현이 정확하다. “두 진영으로 쪼개진 시장.”
지난주 신규 공매도가 147억 달러 늘었다. 동시에 신규 매수도 48억 달러 들어왔다.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산다. 한쪽은 거시지표를 보는 약세론자, 다른 쪽은 AI 조정을 매수 기회로 보는 투자자다.
스페이스X — 6월의 뇌관
여기에 사상 최대 IPO가 겹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6월 12일 나스닥에 상장한다. 종목코드 SPCX. 주당 135달러. 5억5560만 주를 팔아 750억 달러를 조달한다. 기업가치 1조7500억 달러. 역사상 가장 큰 IPO다. 테슬라(약 1조6000억 달러)를 제치고 미국 7위 기업이 된다.
문제는 돈의 흐름이다.
대형 IPO는 새 돈을 부르기보다 있던 돈을 빨아들인다. 기관이 청약 자금을 마련하려면 들고 있던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 매물이 기존 빅테크를 누른다. 지수 전체가 눌린다. 청약에는 목표(750억 달러)의 두 배인 1500억 달러가 몰렸다. 그만큼 다른 곳에서 돈이 빠진다는 뜻이다.
지수 편입을 둘러싼 논란도 크다. 나스닥100은 규칙을 바꿨다. 원래 신규 상장사는 최소 3개월을 지켜본 뒤 편입했다. 스페이스X엔 ‘패스트 엔트리’를 적용한다. 상장 15거래일 뒤 편입이 가능하다. 유통물량(전체 주식 중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비율)이 3%에 불과한데, 12%로 간주해 비중을 준다. 반면 S&P500은 예외를 거부했다. 4개 분기 연속 흑자라는 규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는 2025년 매출 187억 달러(33% 증가)에도 49억 달러 적자였다. S&P500 편입은 빨라야 1년 뒤다.
값도 시비가 붙었다. 모닝스타는 스페이스X의 적정가치를 7800억 달러로 봤다. 상장 목표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거대한 IPO가 호재일지 악재일지. 답은 12일 첫 거래에서 드러난다.
한국이 받는 충격 — 빚투의 그늘
한국은 미국 기술주와 한 몸이다. 외국인이 미 빅테크 수급에 따라 코스피 반도체 대형주를 사고판다. 미국이 흔들리면 한국도 흔들린다. 9일 코스피 급반등도 간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5% 넘게 오른 덕이었다.
그 사이 개인은 빚을 냈다.
5대 은행 개인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42조9516억원으로 불었다. 3년 7개월 만에 최대다. 폭락과 반등이 엇갈린 5일과 8일, 단 이틀 만에 6085억원이 늘었다. 떨어졌을 때 빚으로 사들인 것이다. 반등을 노린 ‘빚투’다.
빚으로 산 주식은 양날의 칼이다. 오르면 수익이 커진다. 떨어지면 손실도 커진다. 변동성이 큰 장에서 빚투가 가장 위험하다.
무엇을 봐야 하나
운명은 며칠 안에 갈린다.
10일 밤(한국시간)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나온다. 물가가 예상을 웃돌면 금리 공포가 다시 커진다. 11일엔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실적이 나온다. AI 투자 기대에 못 미치면 반도체株가 흔들린다. 12일 스페이스X가 상장한다. 16~17일엔 연준의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통화정책 결정 회의)가 열린다.
변수 하나하나가 뇌관이다.
결론
강세론과 약세론은 같은 그림을 본다. AI 투자 사이클이다.
약세론은 그 투자가 과하다고 본다. 빅테크가 현금흐름을 통째로 설비에 쏟아붓는데, 성과는 아직 일부 종목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강세론은 그 투자가 결국 이익을 만든다고 본다. 1990년대 인터넷 붐도 3년 뒤에야 생산성으로 터졌다는 논리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다만 시점이 문제다.
지금 시장이 떠는 건 방향을 몰라서가 아니다. AI가 만든 거대한 베팅이 옳은지, 그 답이 나올 순간이 다가와서다. CPI가, 연준이, 스페이스X가 그 답의 일부를 보여줄 것이다.
공포지수 91. 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이번 주가 분수령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