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시작된 간편식의 혁명 — 냉동식품은 어떻게 편의점을 채웠나

일요일 아침, 늦잠에서 깨 냉장고 문을 엽니다. 다행히 ‘해장국’이 보입니다. 뜨거운 물에 담가 녹이는 사이,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리면 따끈한 밥 한 공기가 완성됩니다. 오후엔 1인용 냉동 피자를 3분 데워 어젯밤 편의점에서 사 온 콜라와 곁들입니다. 저녁엔 냉동 김치볶음밥을 꺼내 남아 있던 스팸과 함께 볶아 달걀 프라이를 얹습니다. 돌이켜 보니 하루 세 끼를 모두 냉동식품으로 해결했더군요. 여기에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 김밥까지 더하면 일요일 세끼 조합은 얼마든지 변주됩니다. 일요일 이 모습은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풍경일 겁니다.

세계인의 식탁을 지배하는 냉동식품

냉동식품이 어느새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편의점 냉동고만 들여다봐도 만두·돈가스·핫도그·튀김부터 국·탕·찌개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시장 규모가 이를 증명합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냉동식품 시장은 2025년 약 3251억 달러(약 450조 원)에 이르렀고, 매년 5% 안팎으로 성장해 2034년 5081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국내만 봐도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2022년 5조 85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24년 6조 5000억 원대로 커졌습니다. 그 한복판에 냉동식품이 있습니다.

성장은 필연에 가깝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맛이 달라졌습니다. ‘냉동식품은 신선식품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은 급속 냉동 기술 도입후 거의 사라졌습니다. 식재료의 신선도와 영양을 그대로 가둘 수 있게 됐고, 포장·보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국 어디서나 같은 품질을 맛볼 수 있게 됐습니다. 원하는 만큼 ‘1인분’씩 꺼내 먹는 시대, 냉동식품의 부상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100년 전, 한 생물학자의 발견

현대적 냉동식품의 역사는 의외로 짧습니다. 100년 남짓이죠. 당연합니다. 냉동식품은 냉장고 없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20세기 초, ‘음식을 얼려 판다’는 발상을 처음 사업으로 옮긴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생물학자 클래런스 버즈아이(Clarence Birdseye)입니다. 그는 1912년부터 캐나다 래브라도에서 모피 사업과 야생동물 조사를 하던 중, 원주민 이누이트가 잡은 생선을 영하 40도의 칼바람에 순식간에 얼리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놀랍게도 이렇게 언 생선은 해동 후에도 신선한 맛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버즈아이는 빠르게 얼리면 물이 미세한 얼음 결정으로 맺혀 세포벽을 거의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천천히 얼리면 큰 얼음 결정이 세포막을 파괴해 맛과 식감이 망가지는 것과 정반대죠. 그는 1924년 매사추세츠 글로스터에 ‘제너럴 시푸드(General Seafoods)’를 세우고 이중 벨트식 급속 냉동기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초기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냉동식품의 안전성을 의심했습니다. 전환점은 자본이었습니다. 1929년 버즈아이가 회사와 특허를 거대 식품기업 포스텀(훗날 제너럴 푸드)에 약 2200만 달러라는 거액에 넘기면서, 비로소 대중화에 필요한 자금과 유통망이 마련됩니다. 1930년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매장에 ‘버즈아이(Birds Eye)’ 브랜드 냉동식품이 처음 깔린 게 그 출발점입니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이 가속을 붙입니다. 무기 제작에 금속이 총동원되면서 통조림 생산이 어려워졌고, 그 빈자리를 냉동식품이 메운 겁니다. 결정적 토대는 냉장고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 가정의 80% 이상이 냉장고를 갖추면서, 냉장고에 딸린 냉동실이 곧 냉동식품의 가정 내 보관처가 됐습니다. 버즈아이가 기술을 완성한 지 한 세대 만에, 냉동식품은 미국의 식탁을 점령했습니다.

한국 식탁을 점령하기까지

한국의 냉동식품 산업은 1960년대 후반에 싹텄습니다. 1968년 한국냉장이 세워져 농수산물·축산물의 냉동·냉장 보관을 맡았습니다. 소매 시장은 1980년대에 열립니다. 1980년 천일냉동식품의 냉동만두가 그 시초로 꼽히고, 이후 도투락·삼포식품 등이 만두를 대량 생산하며 시장을 키웠습니다. 도약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생활 수준이 오르며 냉장고 보급이 크게 늘었고, 대규모 급식 수요와 외국 식문화 유입이 겹치며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전국에 편의점이 퍼진 1990년대 이후 냉동식품은 더욱 다양해집니다. 볶음밥·파스타처럼 한 끼를 대체하는 제품이 쏟아졌고, ‘냉동식품=싸구려’라는 인식도 옅어졌습니다. 2020년대 들어선 코로나19 팬데믹의 집밥 수요가 시장을 한 번 더 끌어올렸습니다. 업계에서는 냉동식품의 진화를 세대로 정리합니다. 1세대 통조림, 2세대 냉동식품, 3세대 컵밥을 지나, 지금은 건강과 프리미엄을 앞세운 4세대로 접어들었다는 겁니다. 밀키트와의 융합, 식물성 단백질 제품이 그 최전선입니다.

1인 가구가 키운 시장, 그리고 편의점

냉동식품의 성장 비결은 여럿이지만, 1인 가구 증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전자레인지만으로 몇 분 안에 조리가 끝나고, 설거지도 거의 없습니다. 외식보다 싸고, 대량으로 사두면 버리기 일쑤인 식재료와 달리 원하는 양만큼 꺼내 쓸 수 있어 낭비도 적습니다. 기업들이 2000년대 이후 ‘소포장’ 제품을 쏟아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모이는 종착점이 바로 편의점입니다. 냉동식품에게 편의점은 가장 중요한 유통망입니다. 초기엔 냉동 스낵과 아이스크림 정도였던 냉동고가, 지금은 프리미엄 볶음밥과 한 끼 대용 만두, 1인용 피자, ‘집밥의 맛’을 재현한 냉동 국물 요리, 나아가 유명 셰프와 협업한 제품까지 빼곡히 채우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편의점이란 버즈아이가 시작한 콜드체인(저온 유통망)의 가장 촘촘한 끝단입니다. 100년 전 래브라도의 얼음에서 출발한 기술이, 새벽 세 시에도 갓 만든 듯한 한 끼를 내어주는 도시의 냉동고로 이어진 셈이죠. 냉동식품 없이는 오늘의 편의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건강과 편의를 동시에 좇는 흐름은 더 강해질 것이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친환경 포장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제품도 늘어날 겁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냉동고 문을 여는 한 그 차가운 편의의 역사는 계속 쓰일 거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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