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3일 원화 첫 여성 인물…발행 17년 만에 전체 현금의 90% 차지
송시열이 빚은 ‘현모양처’ 이미지에 가려진 자주적 삶과 화가의 진실
지갑 속 5만원권을 꺼내 그 얼굴을 들여다본 적 있는가. 쪽 찐 머리, 단정한 이목구비, 어딘가 자애로운 30대 여인. 신사임당이다. 그러나 실제 신사임당은 47세에 눈을 감았고, 우리는 그의 본명조차 알지 못한다. 2009년 6월 23일, 원화 사상 최초의 여성 인물이 최고액권에 올랐다. 17년이 흐른 지금, 이 지폐는 시중 현금의 90%를 차지하는 ‘국민 화폐’가 됐다. 정작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흐릿하다.
◇ 이름도 모르는 화폐 속 여인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 강릉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평산 신씨, 외가인 오죽헌에서 자랐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당대를 대표한 여류 화가이며 문인이다. 흔히 ‘신인선’으로 불리지만 근거가 없다. 1970년대 한 위인전 출판사가 붙인 이름이 굳어졌을 뿐, 이름이 적힌 문헌은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사임당’도 본명이 아니라 호다.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으로, 10대 때 스스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 김구는 빠지고, 신사임당이 남았다
신사임당이 최고액권 얼굴이 된 과정은 우연에 가깝다. 노무현 정부 말기, 한국은행은 5만원권과 10만원권 동시 발행을 추진했다. 10만원권 인물 후보로 김구·정약용·유관순 등 10명이 올라 최종적으로 김구가 뽑혔다. 5만원권은 성평등 흐름에 맞춰 여성으로 정했고, 공모를 거쳐 신사임당이 선정됐다. 당초 최고액권은 10만원권이었다.
하지만 10만원권이 좌초했다. 뒷면 대동여지도의 독도 표기 문제, 김구 초상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 겹쳤다. 이명박 정부는 전자화폐 확산과 물가 우려를 들어 10만원권 발행을 무기한 보류했다. 그 결과 신사임당이 홀로 최고액권에 남았다.
5만원권에는 한국조폐공사 기준 23개의 위조방지장치가 적용됐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대체해 연간 28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됐다. 발행 17년이 흐른 지금, 2024년 말 5만원권 발행잔액은 189조원을 넘어 전체 화폐의 90%를 점유한다. 1만원권 비중은 7%대로 쪼그라들었다.
◇ ‘현모양처’라는 오해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화폐에 올랐다. 그러나 이 이미지부터 후대의 가공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를 격상한 건 17세기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었다. 이이를 학문적으로 떠받들기 위해, 그 어머니를 성리학적 모범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율곡을 낳은 어머니’라는 틀이 이때 굳어졌다.
실제 신사임당은 당대 기준으로도 자주적인 인물이었다. 가난한 시댁에 막대한 혼수를 들고 가 결혼 초부터 가계를 장악했고, 시집살이 대신 친정에 머물렀다. 남편 이원수에게는 “내가 죽거든 재혼하지 말라”며 유교 경전을 들어 조목조목 논박했다고 전해진다. 순응하는 아내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가로서의 명성도 뚜렷했다. 당대에 “안견에 버금가는 화가”라는 평을 들었고, 산수와 포도 그림에 능했다. 다만 진품 논란이 남는다. 국립중앙박물관조차 대표작으로 알려진 초충도를 ‘전(傳) 신사임당’으로 표기한다. 그가 그렸다고 전해질 뿐, 확증된 작품은 없다는 뜻이다.
◇ 논란을 안고, 대표 화폐가 되다
선정 당시 반발은 거셌다. 여성계는 구시대적 여성상인 ‘현모양처’를 대표 화폐에 새기는 데 부정적이었다. 이미 이황·이이가 지폐에 오른 터라 성리학 인물에 또 치우친다는 비판도 나왔다. 업적이 불분명한 인물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택했다는 지적까지 더해졌다.
논란과 별개로, 5만원권은 일상에 깊이 뿌리내렸다. 축의금·조의금·세뱃돈의 사실상 표준이 됐다. 다만 시중에서 보기 어렵다는 점은 숙제로 남는다. 환수율이 2021년 17.4%까지 떨어져 ‘비자금 화폐’ 논란을 낳았고, 2023년 67.1%로 회복했지만 금리에 따라 출렁인다.
화폐 속 여인은 박제된 ‘현모양처’로 남았다. 그러나 기록을 들출수록 드러나는 얼굴은 다르다. 재능 있고 당찬 한 예술가다.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지폐 한 장에,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인물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