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2026 한국 1인가구 보고서’
월세 비중 48.8%, 전세는 2년 새 6.6%p 감소
연체 경험 10.7%…50대 남성은 4명 중 1명
생활비 34%가 방값, 식비·여가비는 밀려나
차현수(가명·54)씨는 두 달째 월세가 밀려 있다. 사업을 접고 원룸으로 옮긴 지 1년. 아직 마땅한 일자리를 잡지 못해 이체일이 다가오면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19일 내놓은 ‘2026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남성 전·월세 거주자 네 명 중 한 명(25.6%)이 차 씨처럼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전세가 급감하면서 그 자리를 메운 건 월세다. 임대차 시장의 빠른 월세 전환은 1인 가구의 삶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월세는 밥값과 여가비 등 생활비를 조용히 갉아먹기 때문이다.
절반이 월세, 4분의 1도 안 되는 전세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만 25~59세 1인가구 2000명을 설문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8.8%가 월세로 산다. 자가는 23.8%, 전세는 23.4%다.
2024년 조사와 비교하면 흐름이 선명하다. 월세 비중은 45.1%에서 48.8%로 올랐다. 전세는 30.0%에서 23.4%로, 2년 만에 6.6%포인트 줄었다. 전세 거주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사라진 셈이다.
전세와 월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 방식이다. 전세는 목돈—통상 집값의 60~80%에 이르는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계약 기간에는 별도의 집세 없이 사는 제도다.
월세는 보증금은 작지만, 매달 고정된 임대료를 낸다. 목돈이 없거나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을 믿기 어려울 때, 세입자는 월세 쪽으로 밀린다.
다만 이 조사는 같은 가구를 추적한 게 아니다. 2024년과 2026년, 서로 다른 2000명을 각각 조사한 결과다. 그래서 “전세 살던 사람이 월세로 옮겨갔다”고 개별 가구 단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1인가구 임대시장에서 전세의 자리가 좁아지는 큰 흐름만큼은 분명하다.
연령별로 보면 월세 의존은 젊을수록 짙다. 20대는 66.5%, 30대는 52.7%가 월세다. 40대(39.5%), 50대(36.1%)로 갈수록 낮아지고, 대신 자가 비중이 20대 7.7%에서 50대 42.1%까지 높아진다. 소득과 자산이 쌓이는 생애주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곡선이다.
월급 100만원 중 34만원이 방값으로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면서, 생활비 안에서 집이 차지하는 몫이 커졌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구축효과’라고 부른다. 한쪽 지출이 불어나면 다른 쪽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1인가구는 월 소득의 39.3%를 생활비로 쓴다. 이 생활비 중 월세·관리비 비중은 24.9%로, 2024년(22.7%)보다 2.2%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식비는 32.6%에서 31.9%로, 여가·쇼핑은 17.2%에서 15.4%로 줄었다. 집에 더 많이 쓴 만큼, 먹고 즐기는 데 덜 썼다는 뜻이다.
월세 거주자만 떼어 보면 격차는 훨씬 크다. 이들은 생활비의 34.4%를 월세·관리비로 쓴다. 생활비를 100만원이라 치면, 34만4000원이 방값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자가 거주자(15.3%)의 두 배가 넘고, 전세 거주자(16.8%)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이다. 그만큼 월세 거주자의 식비(30.0%)와 여가·쇼핑비(12.9%)는 자가 거주자(각각 33.6%, 16.9%)보다 얇다.
전체 소득 대비로도 월세 거주자는 소득의 43.9%를 생활비에 쓴다. 전세(37.7%)와 자가(36.1%)보다 훨씬 높다. 같은 1인가구여도, 어떤 계약을 맺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여유가 갈린다.
10명 중 1명, 월세를 밀린다
주거비 압박은 숫자로만 그치지 않는다. 전·월세 거주자 976명 가운데 10.7%가 “월세를 연체한 적 있다”고 답했다. 2024년 7.9%보다 2.8%포인트 올랐다.
이 10.7%는 자가 거주자를 뺀, 전·월세 거주자만 놓고 본 수치다. “1인가구 전체 10명 중 1명이 연체했다”고 넓혀 읽으면 과장이다. 다만 전·월세 시장 안에서 연체 경험자가 2년 새 뚜렷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성별 격차는 더 크다. 남성 연체 경험률은 14.5%, 여성은 4.9%다. 세 배 차이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연체율이 오른다. 20대 8.5%, 30대 10.3%, 40대 17.8%, 50대 25.6%. 반면 여성은 20대부터 50대까지 4~5%대에서 큰 변화가 없다. 50대에서 남녀 격차는 21.6%포인트까지 벌어진다.
다만 이 세부 수치는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전·월세 거주자 976명 가운데 50대 응답자는 175명이고, 이를 다시 성별로 나누면 표본은 더 작아진다.
50대 남성의 높은 연체율은 중요한 위험 신호지만, 이 표본만으로 전체 50대 남성 1인가구의 연체율을 확정할 수는 없다. 행정통계나 별도 실태조사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청년의 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그동안 1인가구 주거정책은 주로 청년을 향했다. 청년 월세 지원, 청년 전세자금대출, 공공임대주택 우선공급. 취업 초기 세대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젊을수록 월세 의존도가 높은 건 여전한 사실이지만, 연체 위험은 오히려 중년 남성에서 두드러진다.
이혼·사별, 실직, 사업 실패로 가구가 해체된 중년 남성은 자산과 주거를 동시에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은 청년처럼 정책상 뚜렷한 지원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50대는 은퇴를 앞두고 소득이 꺾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월세를 밀리기 시작하면, 단기적인 현금 흐름 문제가 노후 빈곤과 주거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청년과 고령층 사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중년 1인가구가 있다.
혼자 사는 삶,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1인가구는 이제 소수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 집계로 2024년 기준 804만5000가구,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가구 형태다.
그만큼 이들의 주거비 문제는 개인의 사정을 넘어선다. 가구원이 한 명이라는 사실은, 위험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인가구는 소득자가 둘 이상일 수 있고, 임대료와 공과금을 여럿이 나눠 낸다.
1인가구는 그 모든 고정비를 혼자 짊어진다. 소득이라는 안전판이 하나뿐인 사람들이, 임대료 상승이라는 외부 충격에 가장 먼저 흔들린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이동은 계약 방식이 바뀌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임대료가 밥상과 여가를 밀어내고, 일부는 연체로 이어진다. 청년에게는 자산을 모을 시간을 늦추고, 중년에게는 노후를 준비할 여력을 갉아먹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월 지출에서 생활비 비중은 줄었지만, 그 안에서 월세·관리비가 차지하는 몫은 오히려 커졌다”며 “식비와 여가활동·쇼핑처럼 생활의 질과 직결되는 소비가 뒤로 밀렸다”고 정리했다.
방값이 밥상을 이긴 자리에, 차현수씨 같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