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7월 9일 벨 전화회사 설립
특허 논란과 장애인 복지가 공존한 삶
“왓슨, 이리로 좀 오게.” 1876년 3월 10일, 인류 최초의 전화 통화로 기록된 이 한마디는 사실 산(酸) 용액을 옷에 쏟은 다급함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산 용액 송수신 방식은, 경쟁자 엘리샤 그레이가 같은 해 2월 14일 특허청에 먼저 제출한 설계의 핵심이었다.
149년 전 오늘, 1877년 7월 9일 미국 보스턴에서 벨 전화회사(Bell Telephone Company)가 설립됐다. 흔히 ‘벨이 세운 회사’로 알려졌지만, 실제 설립자는 그의 장인이자 후원자였던 가디너 허버드였다. 벨은 이틀 뒤 허버드의 딸 메이블과 결혼했고, 자신의 지분 1487주 대부분을 신부에게 넘겼다. 발명가 한 사람의 회사가 아니라, 특허·자본·혼맥이 얽힌 사업체의 출발이었다.
◇ 발명가인가, 특허 사냥꾼인가
벨을 둘러싼 통설은 흔들린 지 오래다. 2002년 6월 미국 하원은 결의안(H.Res.269)을 통과시켜 이탈리아계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의 전화 발명 공헌을 공식 인정했다. 결의안은 “무치가 1874년 이후 10달러의 특허 예고 수수료만 낼 수 있었다면, 벨에게 특허는 발급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적시했다(미 의회 기록, 2002).
더 직접적인 의혹은 과학저널리스트 세스 슐만이 2008년 저서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The Telephone Gambit)’에서 제기했다. 그는 MIT에서 벨의 실험노트를 열람하다, 워싱턴 로비 기간과 겹치는 12일의 공백 뒤에 갑자기 등장한 액체 송신기 스케치가 그레이의 특허 도안과 흡사하다는 점을 지목했다. 부패한 특허심사관과 공격적 변호인의 도움으로 벨이 그레이의 서류를 엿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이는 정황과 노트 분석에 근거한 ‘주장’으로, 벨 본인은 생전 내내 부인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벨이 무치 결의안 통과 직후인 2002년 6월, 캐나다 의회는 벨을 전화 발명자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누가 ‘진짜 최초’인지는 여전히 학계의 합의가 없다.
◇ 어머니의 침묵, 헬렌 켈러의 빛
발명 논란과 별개로, 벨이 남긴 또 하나의 궤적은 청각장애 교육이다. 그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아내 메이블 역시 어릴 때 성홍열로 청력을 잃었다. 애초에 그의 전화 연구는 ‘농아가 원격으로 소통하게 하는 기계’를 향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헬렌 켈러다. 벨은 켈러 가족에게 보스턴의 퍼킨스 맹학교를 소개했고, 이 인연이 스승 앤 설리번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켈러는 자서전을 벨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늘이 있다. 벨은 우생학 신봉자였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서로 결혼해 ‘결함 있는 인종 변종(defective variety of the race)’을 낳는 것을 우려했고, 1910년 우생학 기록보관소 과학이사회 명예의장까지 맡았다(케임브리지대 연구 등). 수어(手語) 교육을 억압하고 구화(口話)를 강요한 그의 노선은 오늘날 농인 사회에서 ‘억압자’로 비판받는다. 장애인을 돕되, 장애 자체를 ‘고쳐 없애야 할 것’으로 본 모순이었다.
◇ 원형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였다
벨의 사례가 오늘까지 유효한 이유는, 통신 플랫폼의 원형이 발명 하나가 아니라 특허·회사·네트워크의 결합에서 나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통신망은 가입자가 늘수록 가치가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의 산업이었고, 벨 전화회사는 이 논리를 사업으로 구현한 초기 사례다. 특허는 기술의 권리이자 시장 진입을 막는 무기였다. 정작 회사를 세운 뒤 벨은 에디슨의 개량 전화기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했다. 뛰는 발명 위에 나는 사업이 있었던 셈이다.
전화를 ‘누가 발명했는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틀린 물음이다. 벨이 증명한 것은, 아이디어보다 그것을 특허와 회사와 망(網)으로 바꾸는 능력이 산업을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썼다는 세간의 평가는, 20세기 정보산업의 탄생 방식 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오늘, 이 사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0/Alexander_Graham_Bell.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