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재해석부터 스태그플레이션 예고까지
금리 인상기, 한국이 다시 읽는 경제학자
탄생 114주년에 되짚는 빛과 그림자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1970년 영국 경제문제연구소(IEA) 강연 ‘통화이론의 반혁명’에서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문장이다. 56년이 흐른 2026년 7월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렸다. 3년 6개월 만의 인상, 그것도 금통위원 7명 만장일치였다. 직전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물가가 다시 통화정책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이달, 프리드먼은 114번째 생일을 맞는다. 1912년 7월 31일생이다.
■ 이민자의 아들, 시카고의 논객
프리드먼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출신 유대인 이민자였고,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생일 때 세상을 떠났다. 럿거스대 장학생으로 입학해 시카고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박사(1946)를 받았다. 1946년부터 30여 년간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하며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얼굴이 됐다. 1976년 소비 분석, 통화 이론과 역사, 안정화 정책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11월 16일 94세로 별세했다.
■ 대공황을 다시 쓰고, 스태그플레이션을 예고하다
그의 최대 업적은 대공황의 해석을 뒤집은 일이다. 1963년 안나 슈워츠와 함께 펴낸 《미국 화폐사 1867-1960》에서 그는 1929~33년 통화량이 3분의 1가량 줄어든 사실을 제시하며,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실패였다고 주장했다. 이 책 제7장 ‘대수축’은 1965년 단행본으로 따로 출간돼 지금도 별도의 고전으로 읽힌다.
두 번째는 예측이었다. 1967년 미국경제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그는 ‘자연실업률’ 개념을 제시하며, 물가를 올려 실업을 낮출 수 있다는 필립스곡선의 상충 관계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1970년대 물가와 실업이 동시에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자 경고는 현실이 됐다.
인정은 제도권 안에서 나왔다. 2002년 11월 시카고대에서 열린 프리드먼 90세 기념 학술회의에서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이사는 “대공황에 관해 당신이 옳았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당신 덕분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처방까지 성공한 것은 아니다. 통화량을 매년 일정 비율로만 늘리자는 ‘k% 준칙’은 1979~82년 폴 볼커 연준이 통화량 목표제를 실험한 뒤 사실상 폐기됐다. 금융혁신으로 화폐 수요가 불안정해지면서 통화량과 물가의 연결 고리가 헐거워진 탓이다.
■ “기업의 책임은 이윤” 그리고 칠레
프리드먼은 학자이자 논객이었다.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정부 역할 축소를 주장했고, 1980년 PBS 10부작 다큐멘터리 《선택할 자유》와 동명의 책(로즈 프리드먼 공저)으로 대중적 스타가 됐다. 뉴스위크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주장은 늘 구체적이었다. 학교 바우처, 부(負)의 소득세, 그리고 징병제 폐지다. 그는 1969년 미국의 모병제 전환을 검토한 게이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회고록 《행운아 두 사람》에는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이 “용병 군대를 지휘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그가 “장군께서는 노예 군대를 지휘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되받은 장면이 담겨 있다. 미국은 1973년 징병을 중단했다.
1970년 9월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문은 더 논쟁적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는 이른바 ‘프리드먼 독트린’이다.
그림자도 짙다. 1975년 칠레를 방문해 피노체트 군사정권 인사들에게 물가 안정을 위한 ‘충격요법’을 조언한 일은 두고두고 공격받았다. 1976년 노벨상 시상식장 밖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는 “경제학 자문이 정권 지지는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진보 진영은 그를 ‘금융제국주의의 이론가’로 규정했다.
■ 2026년 한국이 그를 다시 읽는 이유
지금 한국 물가는 프리드먼 명제의 시험대다. 6월 소비자물가 3.2% 가운데 석유류가 24.7% 올라 전체 상승률을 0.93%포인트 끌어올렸다. 반면 식료품·에너지를 뺀 근원물가는 2.5%다. 화폐적 현상인가, 공급 충격인가.
프리드먼의 답은 ‘장기’에 있었다. 유가 급등은 상대가격 변동일 뿐이며, 그것이 지속적 물가 상승으로 굳으려면 통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7월 금통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까지 안정적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도 기대 인플레이션 차단이라는 같은 문법 위에 있다.
제도에도 흔적이 남았다. 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을 걷는 대신 현금을 주는 근로장려금(EITC)은 그의 부의 소득세 구상에서 나왔다. 2025년 7월 시행된 개정 상법의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 그리고 이달 23일 발효된 독립이사·3%룰 역시 주주 우선주의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의 한국판이다.
프리드먼은 오는 11월 서거 20주기를 맞는다. 그를 자유의 옹호자로 볼지, 불평등을 정당화한 설계자로 볼지는 여전히 갈린다. 다만 금리를 올릴지 말지, 정부는 얼마나 커야 하는지를 묻는 순간마다 우리는 그가 만든 질문지 위에 서 있다.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의 영향력이다.
![[오늘, 이 사람] 밀턴 프리드먼](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0/Portrait_of_Milton_Friedma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