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9일 만에 다시 불붙은 호르무즈 ‘유가 뇌관’

미·이란 종전 9일 만에 호르무즈 상선 피격·바레인 드론 공격
골드만 “4분기 브렌트 80달러”…재봉쇄 땐 유가 다시 출렁

종전 합의는 9일을 버티지 못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4일 전쟁을 끝내기로 했다.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렸다. 70달러 후반까지 내려온 국제유가가 안도했다. 그 안도가 26일 깨졌다. 호르무즈에서 상선이 피격됐고, 미군이 보복 타격에 나섰다. 이란은 27일 바레인의 미 해군 5함대를 겨냥해 드론을 날렸다. 한국 경제가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왜 우리는 매번 이 좁은 바닷길에 발목을 잡히나.

◇ ‘9일 천하’로 끝난 종전 합의

지난 2월 말 시작된 미·이란 전쟁은 한 차례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이란은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4월 초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11달러를 넘었다(인베스팅닷컴, 4월 2일). 전쟁 전 70달러 수준의 1.6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중동산 기준유인 두바이유는 한때 170달러까지 치솟았다.

양국은 4월 초 2주 휴전에 합의했다. 6월 14일엔 종전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전면 개방을 예고했다. 19일 스위스 서명, 21일 후속 협상이 이어졌다. 유가는 빠르게 식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이란 핵프로그램과 레바논 문제는 후속 협상으로 미뤄졌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 호르무즈가 ‘글로벌 유가 스위치’인 까닭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외해를 잇는 유일한 통로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33㎞에 그친다. 사우디아라비아·UAE·쿠웨이트·이란의 원유가 모두 이 길로 나간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기준 전 세계 해상 원유의 약 20%,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이곳을 지난다.

좁다는 점이 곧 약점이다. 기뢰 몇 발, 자폭 드론 몇 기로도 통항을 마비시킬 수 있다. 봉쇄가 현실화하면 경로는 단순하다. 공급 차질 우려가 유가를 밀어 올리고, 해상운임과 전쟁보험료가 따라 뛰며, 물류비 전반이 오른다. 우회로도 마땅찮다. 송유관 수송 능력은 이 지역 하루 원유 물동량의 일부에 그친다. 그래서 봉쇄 신호 한 번에 시장이 즉각 반응한다.

◇ 한국이 유독 취약한 구조

한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수입 원유의 70%가량이 중동산이고,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지난다. LNG도 5분의 1가량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대체 조달은 이론상 가능하나 현실은 다르다. 아프리카·북미산으로 경로를 틀면 항해 시간과 운임이 늘어난다.

유가 충격은 곧 물가 충격이다. KDI는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유가 상승이 2026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시나리오별로 1.0~1.6%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KDI 2026 상반기 경제전망). 산업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르면 제조업 생산비용이 0.7%가량 상승한다고 본다. 석유화학·정유·철강처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이 먼저 타격을 받는다. 환율도 약한 고리다. 원·달러 환율은 6월 24일 1535원 안팎까지 올랐다(트레이딩이코노믹스). 고유가와 약(弱)원화가 겹치면 수입 물가 부담은 배가된다.

◇ 박스권이냐, 재급등이냐

관건은 호르무즈 정상화 속도다. 종전 합의 직후 골드만삭스는 2026년 4분기 브렌트유를 배럴당 80달러, 2027년 평균을 75달러로 전망했다(골드만삭스 6월 보고서). ‘단기 급락 뒤 박스권’에 무게를 둔 것이다. 다만 두 가지 단서를 달았다. 해협 내 기뢰 제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 미·이란 핵협상이 깨지면 이란이 다시 봉쇄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26~27일 충돌은 그 두 번째 시나리오의 예고편이다. 협상 테이블이 살아 있는 만큼 전면전 재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도, 종전 양해각서(MOU)를 지렛대로 쥔 이란도 판을 깨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지적 타격 → 유가 출렁임’의 반복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와 비축유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배경이다.

호르무즈는 다시 닫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열린 것도 아니다. 종전 문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드론이 날았다. 한국 경제가 쥔 패는 결국 하나다. 이 좁은 바닷길에 얼마나 덜 기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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