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조 캐나다 잠수함 독일 TKMS로…성능 대등에도 ‘나토 상호운용성’이 갈라
총리실 “협상 결렬 시 한화와 협상”…사우디·그리스 후속전에 시선
세계 1위 디젤 잠수함 수출국 독일이 이겼다. 하지만 독일 혼자 이긴 게 아니었다.
60조원 규모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선정됐다. 한화오션은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진 방식이 심상치 않다. 독일은 노르웨이 정부까지 끌어들이고, 자국 인도 물량 순번을 양보하는 강수를 뒀다. 첫 수출에 도전한 한국을 꺾기 위해서였다. 캐나다 정부는 여지도 남겼다. TKMS와 협상이 깨지면 한화오션과 협상하겠다고 했다.
◇ 60조 사업, 애초 독일이 앞섰다
CPSP는 캐나다 해군의 노후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3000톤급 신형 12척으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건조에 그치지 않는다. 이후 30~40년 유지·보수가 따라붙는다. 규모는 최대 60조원. 생애주기 비용까지 넣으면 1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조선업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6일(현지시간)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TKMS 선정을 발표했다(캐나다 총리실). 캐나다 역사상 최대 방산 사업이다.
당초 판세는 독일 쪽이었다. 캐나다와 독일 모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TKMS는 20개국에 잠수함을 판 명가다. 프랑스 나발, 스페인 나반티아, 스웨덴 사브는 일찌감치 밀려났다. 결선은 한화오션 대 TKMS, 1대1이었다.
◇ 성능은 대등…승부는 다른 데서 갈렸다
평가 초반부터 캐나다 정부는 양측 잠수함이 모두 자국 해군 요구 성능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캐나다 정부). 기술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함정 성능 밖으로 옮겨갔다. 30년 넘게 이어질 유지·보수(MRO)와 현지 경제 파급효과다. 입찰 지침상 이 두 항목의 배점이 함정 성능을 크게 앞섰다.
경제 패키지에서도 접전이었다. 한화오션은 700억달러(약 97조원) 규모 투자·교역과 2026~2044년 매년 2만5000개 일자리를 제시했다(외신 종합). 독일 TKMS는 계약 기간 캐나다 국내총생산(GDP)에 860억달러를 보태겠다고 맞섰다(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숫자만 보면 한국이 밀리지 않았다.
결정타는 나토 상호운용성이었다. TKMS의 212CD는 독일·노르웨이와 같은 플랫폼을 쓴다. 정비와 부품망을 공유한다. 카니 총리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튀르키예로 떠나는 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캐나다 총리실). 독일과 노르웨이 정부는 자국에 인도할 212CD 순번 일부를 캐나다에 먼저 배정하겠다고 제안했다(현지 보도). 그만큼 다급했다는 방증이다.
◇ 졌지만, 오히려 증명했다
한화오션에는 이번이 장보고-Ⅲ(KSS-Ⅲ)의 첫 수출 도전이었다. 실적 없는 신참이 세계 1위 독일을 결선까지 몰아붙였다. 증명의 장면도 있었다. 지난 6월 한화오션이 건조한 도산안창호함이 태평양을 자력으로 건넜다. 1만5000㎞를 항해해 캐나다 기지에 닿았고, 현지 합동훈련까지 마쳤다(연합인포맥스).
정부도 끝까지 밀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카니 총리를 만나 전략적 협력을 약속했다(경향신문). 민관이 원팀으로 뛰었다.
납기도 앞섰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 ‘원팀’을 이뤄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약속했다. 독일보다 1년 빨랐다. 무엇보다 캐나다 총리실이 문을 닫지 않았다. TKMS와 협상이 결렬되면 한화오션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했다(캐나다 총리실). 완전한 탈락이 아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실적보다 나토 시장 진입과 수출 레퍼런스 확보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라고 분석했다.
◇ 다음 무대는 사우디·그리스
업계 시선은 벌써 다음 시장으로 향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그리스, 필리핀이다. 노후 함정 교체와 해군 증강 수요가 겹친 곳들이다(밀리터리+). 정연승 연구원은 나토 1위 TKMS를 제친다는 상징성 때문에 한화오션이 사우디·그리스 후속 경쟁에서 유력 후보로 부각될 수 있다고 봤다. 이번엔 제치지 못했지만, 결선 경험 자체가 레퍼런스가 된다.
사우디는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중시한다. 한화오션이 캐나다에 낸 토털 패키지 방식과 평가 코드가 겹친다(밀리터리+). 발판도 쌓였다. 한화오션은 최근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다(경향신문). 구축함에 잠수함까지 더하면 특수선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다. 다만 벽은 남아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서도 탈락했다. 유럽·나토 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변수도 남았다. 이번 발표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일 뿐, 최종 계약이 아니다. 캐나다와 TKMS의 계약 확정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필리프 라가세 칼턴대 교수). 협상이 삐끗하면 한화오션에 기회가 다시 열린다.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동맹의 벽을 어떻게 넘느냐다. 이번 패배는 성능이 아닌 ‘나토’라는 이름에서 갈렸다. 한국 잠수함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 사우디와 그리스로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