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7월 10일 출생…교류 표준으로 20세기 전력망 설계
표준을 먼저 설계한 쪽이 산업의 지도를 그린다. 더 좋은 발명품을 만든 쪽이 아니다. 남들이 따라 쓸 수밖에 없는 규격을 먼저 깔아둔 쪽이다. 그러면 그 뒤로 지어지는 모든 공장과 도시가 그 규격 위에 올라선다.
전기가 그랬다. 그 규격을 설계한 사람이 오늘 태어났다. 1856년 7월 10일, 니콜라 테슬라다. 그가 이긴 건 발명 경쟁이 아니었다. 표준 경쟁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표준이 130년 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 크로아티아 시골 사제의 아들
1856년 7월 10일, 오스트리아 제국 스밀리안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크로아티아다. 세르비아계 정교회 사제의 아들이었다.
1884년, 무일푼으로 뉴욕에 닿았다. 첫 직장이 토머스 에디슨의 회사였다. 몇 달 만에 그만뒀다.
1888년 교류 유도전동기 특허를 냈다. 전기만 넣으면 축이 저절로 도는 모터다. 닳는 부품이 없어 고장이 적었다.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곧바로 특허를 샀다. 판이 바뀌었다.
■ 교류가 이긴 이유, 물로 설명하면
전기가 흐르는 방식은 두 가지다.
직류(DC)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건전지가 그렇다.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늘 같은 방향이다. 교류(AC)는 방향을 계속 바꾼다. 벽에 붙은 콘센트 전기가 그렇다. 한국에선 1초에 60번씩 앞뒤로 방향을 뒤집는다.
19세기 말, 에디슨은 직류를 밀었다. 테슬라는 교류를 밀었다. 둘의 싸움을 ‘전류 전쟁’이라 부른다. 승부는 딱 하나에서 갈렸다. 전기를 멀리 보낼 수 있는가.
전기를 수도관에 흐르는 물이라고 치자. 멀리 보내려면 세게 밀어야 한다. 약하게 밀면 가는 도중에 다 새어버린다. 그런데 세게 민 물을 그대로 집에 들이면 수도꼭지가 터진다. 도착지에선 다시 약하게 낮춰줘야 한다.
교류에는 이 조절 장치가 있었다. 변압기다. 보낼 땐 세게, 도착하면 약하게. 값도 싸고 구조도 단순했다. 직류엔 그런 장치가 없었다. 세게 밀 방법이 없으니 멀리 못 갔다. 에디슨은 동네마다 발전소를 지어야 했다.
증명은 두 번 이뤄졌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웨스팅하우스가 교류로 박람회장 전체를 밝혔다. 1896년 11월,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가 40여㎞ 떨어진 버펄로까지 전기를 보냈다.
그날로 게임은 끝났다. 이후 130년간 지구의 전기는 테슬라가 그린 길로 흘렀다. 지금도 전 세계 송전망의 95% 이상이 교류다. 1960년 국제도량형총회는 자기력의 세기를 재는 단위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테슬라(T)다.
■ 특허는 이겼고, 사업은 졌다
성공은 반쪽이었다. 1901년 그는 J.P. 모건의 돈으로 롱아일랜드에 워든클리프 타워를 세웠다. 전선 없이 전기를 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모건은 자금을 끊었다. 타워는 1906년 사실상 중단됐다.
1916년 파산을 신청했다. 1943년 1월 7일, 뉴욕의 호텔 방에서 홀로 숨졌다. 86세. 빚이 남았다.
테슬라는 기술의 규격은 설계했지만, 그 규격을 돈으로 바꾸는 구조는 설계하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는 시스템을 팔았다. 에디슨은 회사를 남겼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테슬라는 이름만 남겼다.
그 이름은 지금 시가총액 세계 1위권 자동차 회사에 붙어 있다. 2003년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세운 테슬라 모터스다.
일론 머스크는 2004년 투자자로 합류했다. 사명은 니콜라 테슬라에서 왔다. 초기 로드스터의 바퀴를 돌린 게 그가 만든 교류 모터였기 때문이다.
■ AI가 다시 꺼낸 직류
2026년, 교류의 독점에 금이 갔다.
수요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최대 1000TWh로 늘어난다고 봤다. 일본 한 나라가 1년에 쓰는 전기와 맞먹는다. 예전 데이터센터는 10~25MW를 썼다. AI용은 한 곳이 100MW를 넘긴다.
문제는 속도다. 서버는 몇 달이면 들어온다. 전깃줄과 변압기는 몇 년이 걸린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변압기 평균 납기는 143주까지 늘었다. 2년 9개월이다.
여기서 직류가 돌아온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직류에도 이제 ‘조절 장치’가 생겼다. 반도체 기술이 발달하면서 직류도 세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130년 전 직류가 졌던 유일한 약점이 사라진 것이다. 바다 밑이나 아주 먼 거리에선 오히려 직류가 새는 전기가 적다. 이 방식이 초고압직류송전, HVDC다.
둘째, 요즘 기계는 원래 직류로 돌아간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컴퓨터 칩은 전부 직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직류를 교류로 바꿔 보내고, 도착해서 다시 직류로 되돌린다. 오갈 때마다 전기가 샌다. AI 서버처럼 전기를 많이 먹는 곳일수록 이 낭비가 뼈아프다.
한국도 움직였다. 정부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 뒤 99개 송전선로·변전소 사업을 지정하고 ‘HVDC 산업육성 전략’을 내놨다. 새만금-서화성 220㎞ 구간이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의 첫 삽이다.
교류가 사라지진 않는다. 발전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직류 고속도로도 끝에 가선 다시 교류로 바뀐다. 국도는 그대로 두고 고속도로를 새로 놓는 셈이다.
다만 지도는 다시 그려진다. 130년 전, 그 지도를 먼저 그린 사람은 전기를 발명하지 않았다. 전기가 다닐 길의 규격을 정했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번엔 누가 그 길을 정하는가. 오늘 테슬라의 생일에 던져볼 질문이다.